개념 풀이
베게너 — 옳았는데 거부당한 것
앞의 다섯 편은 틀린 이론이 어떻게 쓸모 있었는지를 보았습니다. 마지막 편은 방향을 뒤집습니다. 그는 옳았고, 거부당했고, 인정받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 편에서 정작 어려운 것은 그를 편드는 일이 아닙니다. **그를 거부한 것이 왜 전적으로 부당하지는 않았는지**를 보는 일입니다.
이 시리즈의 앞 다섯 편은 모두 같은 방향이었습니다. 틀린 이론이 왜 그럴듯했고 무엇을 남겼는가. 마지막 편은 반대쪽입니다.
땅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세계
20세기 초 지질학이 어떤 곳이었는지부터 봐야 합니다.
허턴과 라이엘이 세운 지질학은 위대한 성취였습니다. 지구는 어마어마하게 오래되었고,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는 느린 과정만으로 산과 협곡을 설명할 수 있다 — 성경의 대홍수 같은 격변을 끌어들이지 않고도요.
그가 모은 것
1912년, 서른한 살의 기상학자 알프레트 베게너가 대륙이 움직인다고 발표합니다. 그가 내놓은 것은 지도 모양만이 아니었습니다.
- 해안선이 아니라 물속에 잠긴 대륙붕 가장자리로 맞춰보면 훨씬 잘 맞는다.
- 양쪽 대륙의 지층과 산맥이 이어진다. 남아프리카의 지층이 브라질에서 이어지고, 애팔래치아 산맥이 대서양 건너 스코틀랜드에서 계속된다.
- 같은 화석이 나온다. 메소사우루스는 민물에 살던 파충류인데 브라질과 남아프리카에만 있다. 바다를 건널 수 없는 동물이다. 글로소프테리스라는 식물의 씨앗도 마찬가지다.
- 고기후가 맞지 않는다. 인도와 호주와 남아프리카에 같은 시기의 빙하 자국이 있다. 지금 위치로는 적도 근처인데 말이다. 그리고 남극에서는 석탄이 나온다.
그런데 그에게는 엔진이 없었다
여기가 이 편의 핵심입니다. 무엇이 대륙을 밀었는가. 베게너가 내놓은 답은 두 가지였습니다. 극에서 멀어지려는 힘, 그리고 달과 태양의 조석력.
영국의 지구물리학자 해럴드 제프리스가 그것을 계산했습니다.
그리고 부당했던 부분
그런데 거부의 방식에는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 섞여 있었습니다.
베게너는 기상학자였습니다. 지질학자가 아니었어요. 학계 바깥에서 남의 분과에 들어온 사람이었습니다.
1926년 뉴욕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그의 이론은 거의 전원의 반대에 부딪힙니다. 남은 기록을 보면 발언들이 학술적 반박의 선을 넘어 조롱에 가까운 대목이 있습니다. 대륙을 자유롭게 떠다니게 놔두면 지질학을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한다는 취지의 말도 나왔습니다.
여기부터 조금 더
엔진은 다른 데서 오고 있었다
답의 첫 조각은 베게너가 발표하기 전에 이미 나와 있었습니다. 다만 아무도 그것을 지질학과 연결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방사능입니다. 이것은 지구에 대한 두 가지를 한꺼번에 바꿨습니다.
- 켈빈은 지구가 식는 속도로 나이를 계산해 2천만에서 1억 년이라고 했다. 그 계산의 전제는 지구 안에 열원이 없다는 것이었다. 방사성 붕괴라는 열원이 발견되자 전제가 무너졌고, 지구는 46억 년이 되었다.
- 그 열은 어딘가로 가야 한다. 1929년 아서 홈스는 그 열이 맨틀을 아주 느리게 순환시킬 수 있다고 제안했다 — 대륙을 미는 힘이 아니라 대륙을 실어 나르는 흐름이었다.
잠수함을 찾다가 해령을 찾다
잠수함을 탐지하려고 음파로 수심을 재고 배로 자기장을 훑는 기술이 발달합니다. 전쟁이 끝나자 그 장비들이 해저 지도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나온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풍경이었습니다.
- 대양 한가운데를 따라 지구를 한 바퀴 감는 거대한 해저 산맥이 있다.
- 그 산맥 꼭대기에는 갈라진 골짜기가 나 있고, 지진이 그 선을 따라 일어난다.
- 해저 암석은 놀랍도록 젊다. 2억 년보다 오래된 해저가 어디에도 없다. 대륙에는 40억 년 된 암석이 있는데도.
- 해령에서 멀어질수록 해저가 규칙적으로 나이를 먹는다.
거울처럼 대칭인 줄무늬
결정적인 확인은 1963년 바인과 매튜스에게서 옵니다. 그리고 이 대목은 이 시리즈에서 가장 깨끗한 예측-확인 사례입니다.
지구 자기장은 수십만 년에 한 번씩 남북이 뒤집힙니다. 해령에서 갓 굳은 암석은 그때의 자기장 방향을 그대로 기록합니다.
그림은 맞았고 엔진은 틀렸다
그러니 이 이야기의 결말은 '베게너가 옳았다'로 끝나지 않습니다.
한 덩어리였다가 갈라졌고, 그가 모은 지층·화석·고기후 증거는 지금도 그대로 쓰인다
대륙이 해양 지각을 헤치고 나아간다고 했다. 실제로는 바닥째 함께 움직인다
조석력과 원심력으로는 대륙을 움직일 수 없다는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베게너는 이 결말을 보지 못했습니다. 1930년 11월, 그린란드 내륙 기지에 보급을 전달하고 돌아오는 길에 죽었습니다. 쉰 번째 생일 다음 날이었습니다. 시신은 반년 뒤 눈 속에서 발견됐습니다.
그가 옳았다고 학계가 인정한 것은 그로부터 33년 뒤입니다.
그럼 메커니즘을 물은 것이 잘못이었나
이 편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대목입니다. 이 이야기를 '고집스러운 학계가 천재를 알아보지 못했다'로 끝내면 편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 시리즈가 5편에서 세운 기준이 무너집니다.
여섯 편이 남긴 것
시리즈를 닫으며 하나만 세어보겠습니다. 무엇이 이 이론들을 무너뜨렸는가.
- 플로지스톤저울 — 그릇과 공기까지 빠짐없이 잰 것
- 에테르간섭계 — 시간을 재는 대신 빛을 빛과 겨루게 한 것
- 천동설티코의 자료와 케플러의 8분 —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정밀해진 관측
- 갈레노스자기 손으로 든 칼, 그리고 하비의 산수
- 라마르크쥐꼬리 900마리, 그리고 유전자
- 베게너해저를 훑은 자력계 — 그것도 잠수함을 찾던 장비
- 1788허턴 — 깊은 시간, 그리고 격변론에 대한 경계
- 1898퀴리 — 방사능, 지구 나이와 내부 열의 답
- 1912베게너 — 대륙이동설을 발표하다
- 1924제프리스 — 조석력으로는 불가능함을 계산으로 보이다
- 1926뉴욕 심포지엄 — 거의 전원 반대
- 1929홈스 — 맨틀 대류를 제안하다
- 1930베게너, 그린란드에서 죽다
- 1962헤스 — 해저확장설
- 1963바인·매튜스 — 대칭 자기 줄무늬로 확인하다
남은 질문지금 어딘가에는 증거가 쌓였는데 작동 방식을 몰라 밀려 있는 주장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증거도 방식도 없이 자기를 베게너에 견주는 주장은 그보다 훨씬 많을 것입니다. 두 번째가 첫 번째를 흉내 내기는 아주 쉽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보고 둘을 갈라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