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풀이
갈레노스 — 직접 보라고 쓴 책
그는 살아 있는 짐승을 열어 신경을 묶어보고, 동맥을 잘라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한 사람입니다. 책을 믿지 말고 직접 보라고 거듭 썼습니다. 그런데 그 뒤 1400년 동안 사람들은 그의 몸이 아니라 그의 책을 보았습니다. 이 편은 틀린 이론이 아니라 틀린 읽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앞의 세 편은 하늘과 공기와 빛에 관한 이론이었습니다. 틀려도 사람이 죽지는 않았습니다. 이번 것은 다릅니다. 틀린 값이 곧바로 몸에 적용된 이론입니다.
몸에서 나오는 것들
시작은 히포크라테스입니다. 그가 한 일은 병을 신의 벌이 아니라 몸의 문제로 본 것이었습니다. 이게 의학의 출발점입니다.
그럼 몸의 무엇이 문제인가. 답은 관찰에서 나왔습니다. 아플 때 몸에서 나오는 것들을 보면 됩니다.
- 상처가 곪으면 누런 액체가 나온다. 콧물도 그렇다 — 점액.
- 베이면 붉은 것이 나온다 — 피.
- 토하면 쓴 노란 것이 올라온다 — 황담즙.
- 위장에서 피가 나면 변이 검게 나온다 — 흑담즙.
잠깐 열렸던 창
기원전 3세기 알렉산드리아에서 짧은 기간 인체 해부가 허용됩니다. 인류 역사에서 아주 드문 창이었습니다.
헤로필로스는 신경과 힘줄을 구분했고, 감각신경과 운동신경을 나누었고, 지성이 심장이 아니라 뇌에 있다고 했습니다. 직접 열어봤기 때문에 알 수 있었던 것들입니다.
그 창은 곧 닫힙니다. 로마에서 인체 해부는 금지되었습니다.
갈레노스는 게으르지 않았다
이 이야기의 핵심이 여기입니다. 1400년을 버틴 이론이 게으름의 산물이었다면 이야기가 시시해집니다. 정반대였습니다.
갈레노스는 검투사 담당 의사로 일하며 벌어진 상처를 통해 몸속을 들여다봤습니다. 그리고 그는 실험을 했습니다.
- 살아 있는 돼지의 목에서 신경 하나를 찾아 묶었다. 돼지는 계속 몸부림쳤지만 비명이 멎었다 — 목소리는 뇌에서 내려온 신경이 지배한다.
- 척수를 높이를 달리해 끊어보았다. 끊은 자리에 따라 마비되는 부위가 달랐다 — 신경은 척수를 타고 내려간다.
- 동맥을 두 곳 묶고 그 사이를 열었다. 안에는 공기가 아니라 피가 있었다 — 당시 널리 퍼진 믿음을 뒤집은 실험이다.
- 콩팥으로 가는 관을 묶자 위쪽이 부풀었다 — 오줌은 콩팥에서 만들어져 내려간다.
그런데 그는 사람을 열어본 적이 없다
로마법이 인체 해부를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연 것은 바르바리 원숭이, 돼지, 개, 곰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해부도에는 사람에게 없는 것들이 들어갑니다.
뇌 아래에 그물처럼 얽힌 혈관 덩어리. 사람에게는 없다. 그런데 그의 체계에서는 생명의 기운이 정신의 기운으로 바뀌는 결정적인 자리였다
사람의 것보다 휘어 있다. 그는 본 대로 그렸고, 그것이 사람 뼈의 표준이 되었다
심장 좌우를 가르는 두꺼운 벽에 눈에 안 보이는 구멍이 있어 피가 스며 넘어간다고 했다
여기부터 조금 더
140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흔히 그 사이가 텅 빈 것처럼 이야기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슬람 세계는 갈레노스를 보존만 한 것이 아니라 검증했습니다.
10세기 페르시아의 알라지는 아예 『갈레노스에 대한 의문』이라는 책을 씁니다. 자기 환자에게서 관찰한 것이 갈레노스의 서술과 다르다고 조목조목 적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 이렇게 쓰는 것이 갈레노스가 원한 방식일 것이라고.
문제는 다른 데서 자랐습니다. 유럽 대학에서 갈레노스가 교과서가 된 것입니다.
베살리우스가 한 일
1543년 — 코페르니쿠스의 책이 나온 바로 그해입니다 — 스물여덟 살의 베살리우스가 『인체 구조에 관하여』를 냅니다.
그가 발명한 도구는 없습니다. 새 이론을 세운 것도 아닙니다. 그가 한 일은 자기 손으로 칼을 든 것뿐입니다.
그리고 책과 다른 곳을 200군데 넘게 찾아냈습니다. 심실 사이의 구멍에 대해서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그런 통로를 찾을 수 없다고.
그가 알아낸 가장 중요한 사실은 개별 오류가 아니었습니다. 갈레노스가 서술한 것은 사람 몸이 아니라 원숭이 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 둘
결정타는 1628년 하비에게서 나옵니다. 그의 무기는 새로운 관찰이 아니라 산수였습니다.
심장이 한 번 뛸 때 나가는 피의 양을 재고, 하루치 심박수를 곱합니다. 몸무게의 수백 배가 나옵니다. 간이 그만큼의 피를 매일 새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같은 피가 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비에게도 빈 곳이 있었습니다. 동맥과 정맥을 잇는 연결이 있어야 하는데, 그는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현미경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사혈은 남았다
이론이 무너진 뒤에도 치료는 남았습니다. 하비가 1628년에 순환을 밝혔는데, 워싱턴이 사혈로 죽은 것은 171년 뒤입니다.
왜 그렇게 오래 갔을까요. 효과가 있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 피를 빼면 열이 내리고 맥이 느려진다. 실제로 그렇게 된다 — 혈액량이 줄었으니까.
- 환자가 나으면 사혈이 들었다고 본다.
- 환자가 죽으면 너무 늦게 왔거나 너무 위중했다고 본다.
- 어느 쪽이 나와도 이론은 안전하다.
무엇이 남았는가
신경을 묶어 기능이 사라지는지 보는 방식은 지금도 생리학의 기본 도구다
근육과 뼈에 대한 그의 서술은 상당 부분 지금도 맞다. 사람과 원숭이가 겹치는 만큼
그가 가장 힘주어 쓴 말이자 후대가 1400년간 지키지 않은 말
사혈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피가 지나치게 많아지는 병이나 철분이 몸에 쌓이는 병에서는 지금도 피를 뽑는 것이 정식 치료입니다. 이유가 달라졌을 뿐입니다.
- BC 400히포크라테스 — 병을 몸의 문제로 보다
- BC 280헤로필로스 — 알렉산드리아에서 사람을 해부하다
- 170갈레노스 — 짐승을 열어 실험하고, 사람을 열지 못하다
- 910알라지 — 『갈레노스에 대한 의문』
- 1543베살리우스 — 직접 칼을 들고 200곳을 고치다
- 1628하비 — 산수로 순환을 증명하다
- 1661말피기 — 모세혈관을 눈으로 확인하다
- 1799워싱턴 — 사혈 끝에 죽다
- 1828피에르 루이 — 숫자로 사혈의 무용을 보이다
남은 질문갈레노스는 직접 보라고 썼고, 후대는 그 문장을 읽었습니다. 우리가 확실하다고 여기며 그냥 넘기는 것들 가운데, 마지막으로 누가 직접 확인했는지 알고 있는 것은 몇 가지나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