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풀이
천동설 — 1400년 동안 맞은 예측
해가 뜨고 집니다. 별이 돕니다. 발밑은 미동도 없습니다. 천동설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였고, 그 위에 세운 계산은 1400년 동안 맞았습니다. 그것을 무너뜨린 것은 더 잘 맞는 계산이 아니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더 정확하지 않았거든요.
1편의 플로지스톤은 방향만 반대로 쥔 이론이었고, 2편의 에테르는 아예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것은 또 다릅니다. 천동설은 계산이 맞았습니다. 틀린 이론 가운데 가장 오래, 가장 쓸모 있게 쓰인 것입니다.
지구가 움직인다면 보여야 할 것들
먼저 오해를 하나 걷어내야 합니다. 옛사람들이 지구가 움직일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생각했고, 검토했고, 근거를 들어 기각했습니다.
기원전 3세기에 아리스타르코스는 이미 태양이 중심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이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 지구가 태양 둘레를 돈다면, 반년 사이에 별을 보는 각도가 달라져야 한다. 아무리 정밀하게 재도 그런 변화는 없었다.
- 지구가 그렇게 빠르게 달린다면, 위로 던진 돌은 뒤쪽에 떨어져야 한다. 똑바로 떨어졌다.
- 구름과 새는 땅을 붙들고 있지 않은데, 왜 뒤로 밀려나지 않는가.
- 무거운 것은 우주의 중심을 향해 떨어진다. 지구가 중심이 아니라면 왜 돌이 지구로 떨어지는가.
화성이 뒤로 간다
천동설이 풀어야 했던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행성들이 이상하게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별들 사이를 천천히 동쪽으로 나아가던 화성이, 몇 달에 한 번 멈춥니다. 그러고는 거꾸로 서쪽으로 되돌아갑니다. 얼마 뒤 다시 멈추고 원래 방향으로 갑니다. 하늘에 고리 모양의 자국을 그리는 셈입니다.
서기 150년, 프톨레마이오스가 『알마게스트』에서 답을 완성합니다. 큰 원 위에 작은 원을 얹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억지가 아니라 도구였다
주전원을 우스운 땜질로 여기기 쉽습니다. 그렇지 않았습니다.
원 위에 원을 얹는 방식은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어떤 운동이든 원하는 만큼 가깝게 흉내 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이것이 수학적으로 왜 그런지도 압니다. 되풀이되는 것은 단순한 원운동의 합으로 분해되거든요. 프톨레마이오스는 그 원리를 몰랐지만 손으로 그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널리 퍼진 이야기 둘
이 대목에서 흔히 이렇게 이어집니다. 관측이 정밀해지면서 주전원이 수십, 수백 개로 불어났고, 감당할 수 없이 복잡해져서 무너졌다.
사실이 아닙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 전체가 쓴 원은 마흔 개 남짓입니다. 중세 내내 그 수가 계속 불어난 것도 아닙니다. 복잡함이 이 이론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더 널리 퍼져 있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주전원을 없앴다는 것입니다.
그럼 무엇을 얻었는가
코페르니쿠스가 얻은 것은 정확도가 아니라 설명이었습니다. 차이는 여기서 갈립니다.
수성과 금성은 왜 태양에서 일정 각도 이상 멀어지지 않는가 — 두 행성의 주전원 중심을 태양 방향에 묶어두는 규칙을 따로 넣어야 했다
행성의 역행은 왜 하필 그 행성이 태양 반대편에 올 때만 일어나는가 — 이유 없이 그렇게 맞춰져 있었다
수성과 금성은 지구보다 안쪽 트랙에 있으니 멀어질 수 없고, 역행은 안쪽 트랙의 지구가 바깥을 추월할 때 생긴다
여기부터 조금 더
자료만으로는 결정되지 않았다
티코 브라헤는 망원경 없이 맨눈 관측의 한계까지 간 사람입니다. 그의 자료는 당시 어떤 것보다 정밀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동설을 거부했습니다. 이유는 2000년 전과 같았습니다. 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장비로 못 잡았다면 별이 터무니없이 멀다는 뜻인데, 그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절충안을 내놓습니다. 지구는 멈춰 있고, 태양이 지구를 돌고, 나머지 행성은 그 태양을 돈다.
금성이 보름달이 되다
1610년,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하늘로 돌립니다. 그가 본 것 중 결정적인 것은 목성의 위성이 아니라 금성의 위상이었습니다.
금성은 달처럼 차고 기웁니다. 그런데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서 금성은 언제나 태양보다 지구 쪽에 있으므로, 보름달 모양이 될 수 없습니다. 갈릴레오는 보름달 모양의 금성을 보았습니다.
8분의 오차
케플러는 티코의 화성 자료를 물려받아 원 궤도로 맞추려 했습니다. 거의 다 맞았습니다. 어긋난 것은 각도로 8분, 보름달 지름의 4분의 1쯤 되는 아주 작은 값이었습니다.
이전이라면 무시했을 크기입니다. 그런데 티코의 자료는 그만한 오차를 낼 만큼 허술하지 않았습니다.
이 8분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그것만으로 천문학 전체를 다시 세우게 되었다.케플러
1687년 뉴턴이 왜 하필 타원인지에 답합니다. 거리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 하나에서 케플러의 세 법칙이 전부 따라 나왔습니다. 이제 지동설은 하늘의 그림이 아니라 땅의 물리학과 같은 법칙이 되었습니다.
1838년, 마지막 반박이 풀리다
그런데 2000년 전 반박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였습니다. 별의 시차를 아무도 보지 못했으니까요.
1838년 프리드리히 베셀이 백조자리 61에서 마침내 그것을 잡아냅니다. 각도는 0.3초각. 1킬로미터 밖의 동전이 만드는 각도쯤 됩니다.
무엇이 남았는가
되풀이되는 운동을 단순한 원운동의 합으로 분해하는 발상은 오늘날 신호와 파동을 다루는 기본 도구가 되었다
별 1022개의 목록과 관측 방법이 1400년간 전해지며 티코와 케플러가 딛고 설 바닥이 되었다
설명해야 할 우연이 많은 이론을 의심하라 — 정확도가 같을 때 무엇으로 고를지에 대한 답
- BC 340아리스토텔레스 — 지구 중심 우주론을 세우다
- BC 270아리스타르코스 — 태양 중심을 말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다
- 150프톨레마이오스 — 『알마게스트』, 주전원 체계를 완성하다
- 1543코페르니쿠스 — 지동설을 내놓다 (주전원은 그대로)
- 1572티코 — 정밀 관측, 그리고 절충 체계
- 1609케플러 — 타원을 넣어 주전원을 없애다
- 1610갈릴레오 — 금성의 위상으로 프톨레마이오스를 끝내다
- 1687뉴턴 — 왜 타원인지에 답하다
- 1838베셀 — 연주시차를 마침내 관측하다
남은 질문코페르니쿠스는 결정적 증거 없이 옳았습니다. 티코는 같은 자료를 보고 신중하게 틀렸습니다. 두 사람의 차이는 그때는 알 수 없었고 나중에야 드러났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증거 없이 옳은 주장과 증거 없이 틀린 주장을, 우리는 무엇으로 가려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