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풀이
에테르 — 아무것도 못 찾은 실험
소리는 공기를 타고 옵니다. 물결은 물을 타고 가고요. 그런데 빛은 아무것도 없는 우주를 건너옵니다. 그럼 빛은 무엇을 타고 오는 걸까요. 에테르는 억지가 아니라 이 물음에 대한 성실한 답이었습니다. 그것을 찾으러 간 실험은 아무것도 찾지 못했고, 바로 그 못 찾음이 물리학을 갈랐습니다.
1편에서 플로지스톤은 방향만 반대로 쥔 이론이었습니다. 이번 것은 다릅니다. 에테르는 방향이 반대인 게 아니라 아예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없다는 것을 알아낸 방식이 과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이 됩니다.
빛은 파동인가 알갱이인가
이 물음이 먼저입니다. 빛이 작은 알갱이라면 매질은 필요 없습니다. 총알이 날아가는 데 공기가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요. 하지만 파동이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파동은 무언가가 출렁이는 것이고, 출렁일 무언가가 있어야 하니까요.
하위헌스는 빛을 파동으로 보았고, 뉴턴은 알갱이로 보았습니다. 뉴턴의 권위가 워낙 커서 100년 넘게 알갱이 쪽이 우세했습니다.
1801년, 토머스 영이 좁은 틈 두 개에 빛을 통과시킵니다. 벽에 나타난 것은 밝은 점 두 개가 아니라 밝고 어두운 줄무늬였습니다. 알갱이라면 나올 수 없는 무늬입니다.
에테르가 갖춰야 했던 조건
여기가 이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는 대충 지어낸 말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물리학자들은 이 물질이 어떤 성질을 가져야 하는지 아주 성실하게 따졌습니다.
- 온 우주에 빈틈없이 가득 차 있어야 한다. 별빛이 어디서든 오니까.
- 행성의 운동을 조금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 지구는 수십억 년을 돌면서 느려지지 않았다.
- 빛은 진행 방향과 직각으로 출렁이는 횡파다. 그런데 횡파는 단단한 고체에서만 전달된다.
- 그러므로 에테르는 공기보다 묽으면서 강철보다 단단해야 한다.
맥스웰이 물음을 날카롭게 만들다
1865년, 맥스웰은 전기와 자기를 하나로 묶은 방정식을 내놓습니다. 그 식을 풀자 파동이 나왔고, 그 파동의 속도가 계산되어 나왔습니다. 초속 약 30만 킬로미터. 이미 측정되어 있던 빛의 속도와 같았습니다.
빛이 전자기파라는 것이 여기서 밝혀집니다. 그런데 같은 식이 곤란한 물음을 하나 남겼습니다. 방정식에서 속도가 하나의 값으로 튀어나왔거든요.
여기서 검증할 수 있는 예측이 나옵니다. 지구는 초속 30킬로미터로 태양을 돕니다. 에테르가 우주에 가만히 있다면, 지구 위에 선 우리는 에테르 바람 속에 서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바람을 타고 가는 빛과 바람을 가로지르는 빛은 속도가 달라야 합니다.
강을 건너는 사람과 강을 거슬러 오르는 사람
1887년, 마이컬슨과 몰리가 이것을 재기로 합니다. 문제는 지구의 속도가 빛의 속도의 1만분의 1밖에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차이는 1억분의 1 수준으로 나타납니다. 당시 어떤 시계로도 잴 수 없는 크기였죠.
그래서 시간을 재지 않는 방법을 씁니다. 빛을 빛과 겨루게 하는 것입니다.
- 빛 한 줄기를 반투명 거울로 둘로 가른다.
- 하나는 앞으로, 하나는 옆으로 — 직각인 두 방향으로 같은 거리를 보냈다가 거울로 되돌린다.
- 돌아온 둘을 다시 합친다. 걸린 시간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겹쳤을 때 줄무늬가 생긴다.
- 장치 전체를 90도 돌린다. 두 방향의 역할이 바뀌므로 줄무늬가 움직여야 한다.
둘은 장치를 수은 위에 띄운 돌판에 얹었습니다. 발소리 하나에도 결과가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돌판을 천천히 돌려가며 쟀고, 지구의 공전 방향이 반대가 되는 계절에 다시 쟀습니다.
줄무늬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여기부터 조금 더
이론을 구하는 방법
에테르는 곧바로 버려지지 않았습니다. 조지 피츠제럴드와 헨드릭 로런츠가 각각 같은 생각에 도달합니다. 에테르 속을 달리는 물체는 진행 방향으로 길이가 줄어든다는 것이었습니다.
줄어드는 양이 절묘합니다. 빛이 늦어지는 만큼 정확히 거리가 짧아져서, 둘이 딱 상쇄됩니다. 그래서 아무 차이도 안 보인다는 것이죠.
같은 식, 다른 세계
1905년, 스위스 특허청 심사관이던 아인슈타인은 에테르를 구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물음을 뒤집었습니다.
빛의 속도가 누구에게나 같게 측정된다면? 그것을 설명해야 할 이상한 사실이 아니라 출발점으로 놓으면?
그렇게 놓고 계산하자 로런츠의 그 수축 공식이 그대로 나왔습니다. 다만 이유가 달랐습니다. 물체가 에테르에 눌려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의 시간과 길이가 원래 그렇게 생겼다는 것이었습니다.
널리 퍼진 이야기 하나
교과서에 흔히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마이컬슨·몰리 실험이 실패했고, 그래서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만들었다.
깔끔하지만 정확하지 않습니다. 1905년 논문은 그 실험을 이름으로 인용하지 않습니다. 논문의 첫 문단이 붙들고 있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 자석을 움직이든 도선을 움직이든 같은 전류가 흐르는데, 당시 이론은 두 경우를 전혀 다르게 설명하고 있었다는 비대칭입니다. 아인슈타인은 훗날에도 그 실험의 영향에 대해 일관되지 않게 회고했습니다.
무엇이 남았는가
에테르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찾던 100년이 남긴 것은 적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못 찾은 실험이 무언가를 찾은 실험보다 더 많은 것을 바꾸었다
에테르를 구하려고 만든 수식이 에테르를 없앤 이론의 뼈대가 되었다
에테르를 못 찾은 그 구조가 100년 뒤 중력파를 찾아낸다
세 번째가 가장 좋습니다. 2015년 를 처음 검출한 LIGO는 마이컬슨 간섭계입니다. 빛을 둘로 갈라 직각 두 방향으로 보냈다가 되돌려 겹치는, 1887년과 똑같은 구조입니다. 팔 길이가 4킬로미터로 길어졌을 뿐이죠.
- 1690하위헌스 — 빛을 파동으로 다루다
- 1801영 — 간섭무늬로 파동설을 확정하다
- 1865맥스웰 — 빛이 전자기파임을 보이다
- 1887마이컬슨·몰리 — 에테르 바람을 찾지 못하다
- 1892로런츠·피츠제럴드 — 길이 수축으로 이론을 구하려 하다
- 1905아인슈타인 — 에테르를 필요 없게 만들다
- 2015LIGO — 같은 구조의 간섭계로 중력파를 검출하다
남은 질문마이컬슨과 몰리는 자기 실험을 실패로 여겼습니다. 아무것도 안 나왔으니까요. 지금도 아무것도 안 나온 실험은 대개 발표되지 않고 서랍에 들어갑니다. 우리가 읽는 과학은 무언가 나온 실험들만 모아놓은 것인데, 그렇다면 서랍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