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 ATLAS· 과학 아틀라스

개념 풀이

텅 빈 우주에는 무엇이 있을까 — 빈 곳에도 장은 있다

우주의 모든 점에는 전자기장의 값이 있고, 가장 텅 빈 진공에서도 장은 사라지지 않고 떨립니다. 은하 사이 가장 빈 곳에도 각설탕만 한 공간마다 빅뱅이 남긴 빛 알갱이가 사백 개쯤 떠다닙니다. 빛은 그 장에 이는 물결입니다.

이 글이 꿰는 질문들 35분 분량갱신 2026-09-27

감독의 질문

설명은 쉽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어리둥절했습니다. 이렇게 기본이 되는 이야기를 왜 여태 들어 보지 못했을까. 학창 시절을 더듬어 봐도 배운 기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찾아온 건 반가움보다 의심이었습니다. 우주가 수영장의 물처럼 전자기장으로 가득 차 있다는 말, 정말 그럴까요.

과학의 답 — 텅 빈 곳에도 장은 있다

네, 참입니다. 다만 수영장 물이라는 비유는 반만 맞습니다.

날씨 지도를 떠올려 보세요. 기온은 서울에도, 대전에도, 그 사이 어느 한 점에도 값이 있습니다. 온도가 없는 자리는 없습니다. 물리학에서는 이렇게 공간의 모든 점마다 값이 있는 것을 이라고 부릅니다. 전자기장도 우주의 모든 점마다 값이 있습니다. 빈틈이 없다는 점에서는 물과 같습니다. 하지만 물처럼 무언가가 채워져 있는 게 아니라, 공간의 모든 점이 원래 그런 성질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물 없는 수영장은 있어도, 장 없는 공간은 없습니다.

가장 텅 빈 에서도 전자기장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자리에서도 아주 미세하게 끊임없이 떨립니다. 이 떨림에 담긴 에너지를 라고 부릅니다. 텅 빈 금속판 두 장을 아주 가깝게 마주 세우면 이 떨림 때문에 판이 서로 살짝 끌려간다는 것까지 실험으로 확인했습니다.

우주에서 가장 텅 빈 곳의 풍경

실제로 은하와 은하 사이, 우주에서 가장 텅 빈 곳에 가 봐도 완전히 빈 것은 아닙니다. 각설탕 하나만 한 공간마다 빛 알갱이가 사백 개쯤 떠다닙니다. 우주가 막 태어났을 때 뿜어낸 빛이 138억 년 동안 식어서 남은 것, 입니다. 옛날 텔레비전이 채널 사이에서 지직거리던 화면 속에도 이 빛이 조금 섞여 있었습니다.

빛은 이 장에 이는 물결입니다. 이것을 라고 합니다. 지금 여러분 주변에도 햇빛, 전등 빛, 와이파이와 휴대폰 전파, 몸에서 나오는 열인 까지 수많은 물결이 겹쳐 흐릅니다. 눈에 보이는 빛은 그 가운데 아주 좁은 한 조각일 뿐입니다.

사람 몸도 이 장을 흔듭니다. 신경은 전기 신호로 움직이고, 뇌가 생각할 때도 약한 전자기 물결이 생깁니다. 하지만 너무 약해서, 바깥 전파를 모두 막은 방에서 아주 예민한 장비를 머리 바로 옆에 대야 겨우 잡힙니다. 한 뼘만 떨어져도 다른 물결에 묻혀 버립니다.

여기부터 조금 더

같은 질문을 한 사람들

백오십 년쯤 전, 스코틀랜드의 맥스웰은 전기와 자기가 서로를 낳으며 출렁이는 물결을 수식으로 풀다가, 그 물결의 빠르기가 빛의 빠르기와 똑같다는 걸 알아챘습니다. 빛이 곧 전자기장의 물결이라는 발견입니다.

백 년도 더 전, 물리학자들도 같은 그림을 떠올렸습니다. 소리가 공기를 타고 퍼지듯, 빛도 무언가를 타고 퍼질 거라고요. 그래서 우주를 채운 보이지 않는 물질을 라고 불렀습니다. 미국의 마이컬슨과 몰리가 지구가 에테르를 헤치고 달리는 바람을 재려고 아주 정교한 실험을 했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물은 없었습니다. 장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수영장 비유가 반만 맞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한국의 물리학자 김상욱은 『떨림과 울림』에서 세상의 모든 것이 떨고 있다는 눈으로 빛과 장과 원자를 풀어냅니다. 이 편을 읽고 더 궁금해졌다면 다음 걸음으로 좋은 책입니다.

아직 모르는 것

진공의 떨림에 담긴 에너지를 이론으로 계산하면, 실제 우주를 관측해 얻은 값과 터무니없이 어긋납니다. 1 뒤에 0이 백 개도 넘게 붙을 만큼 틀립니다. 물리학 역사에서 가장 크게 빗나간 예측이라고 불리는 수수께끼이고, 우주를 점점 빨리 부풀리는 암흑 에너지의 정체와도 얽혀 있습니다. 아직 아무도 답을 모릅니다.

영화에서는

다비드의 장치는 파동을 따라가 모으는 기계입니다. 우주가 온통 장이고 모든 것이 그 위의 물결이라는 데까지는 과학입니다. 한 사람이 남긴 물결을 이천 년 뒤에 골라내 읽는다는 것은 영화의 상상입니다. 사람이 일으킨 물결은 한 뼘만 떨어져도 다른 물결에 묻혀 버리니까요. 영화는 과학이 멈춘 그 한 뼘 너머를 상상합니다.

남은 질문텅 빈 곳이 없다면, 우리가 비어 있다고 부르던 것은 무엇이 없던 자리였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