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풀이
지금 들이쉰 숨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 나무는 공기로 지어진다
내쉰 숨은 우주로 날아가지 않고 한두 해면 지구 전체에 섞입니다. 그 숨의 탄소를 나무가 들이마셔 몸을 짓습니다. 물을 빼고 말린 나무의 무게는 대부분 흙이 아니라 공기에서 옵니다. 풀은 금세 공기로 돌려보내지만 나무는 수백 년을 붙잡아 둡니다.
감독의 질문
오래전 알쓸신잡에서,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으로 내쉰 숨이 지금 우리 숨에 섞여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내쉰 숨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 하늘 너머로 흩어지는지, 지구를 감싼 공기 속을 계속 떠도는지, 바다에 녹아 어딘가의 생명이 되는지 궁금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옅어지는지, 곳에 따라 진하고 옅은 차이가 있는지도요.
영화를 만들며 한 가지가 더 걸렸습니다. 이 이야기의 한가운데에는 왜 하필 나무가 서 있을까요. 풀이나 꽃도 같은 일을 하지 않을까요.
숨은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
내쉰 숨은 바람을 타고 퍼집니다. 한 반구 안에서는 한두 달이면 골고루 섞이고, 적도를 넘어 지구 전체에 섞이는 데는 한두 해가 걸립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숨에는 세계 곳곳, 수백 년 전 사람들의 숨이 섞여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평생 내쉰 숨이 지금 내 숨 한 번에 몇 개나 들어 있는지는 자료실 글 「원자에는 기억이 없다」에서 셈해 봤습니다.
숨은 우주로 거의 날아가지 않습니다. 지구의 이 공기를 붙잡고 있어서입니다. 아주 가벼운 수소와 헬륨만 조금씩 새어 나갑니다. 다만 숨 속의 는 그대로 남지 않고 짝을 바꿉니다. 는 식물이 먹고, 산소는 동물이 쓰고, 수증기는 비가 됩니다. 분자는 바뀌어도 원자는 지구를 떠나지 않습니다.
과학의 답 — 나무는 공기로 지어진다
커다란 나무를 보면 흙을 먹고 자랐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나무는 잎의 작은 구멍으로 공기 속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시고, 햇빛의 힘으로 그 탄소를 떼어 내 몸을 짓습니다. 산소는 도로 내보냅니다. 이것이 입니다.
살아 있는 나무 무게의 절반가량은 물입니다. 그 물을 다 빼고 말린 나무를 달아 보면, 대부분이 공기에서 온 탄소와 산소입니다. 흙에서 온 것은 몇 퍼센트 안 되는 광물뿐입니다. 장작을 태우면 재가 한 줌밖에 남지 않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나머지는 왔던 곳, 공기로 돌아갑니다.
바다에서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이 같은 일을 합니다. 그걸 작은 동물이 먹고, 그걸 물고기가 먹습니다. 내 숨의 탄소가 고등어의 몸이 되는 길이 실제로 있습니다.
왜 풀이 아니라 나무일까
풀도 똑같이 공기로 몸을 짓습니다. 다만 풀은 한두 해면 시들어 썩고, 그 탄소는 금세 공기로 돌아갑니다. 나무는 줄기 속에 탄소를 수백 년, 길게는 천 년 넘게 가둡니다. 올리브나무는 그중에서도 오래 사는 나무입니다. 숨의 탄소를 가장 오래 붙잡아 두는 쪽이 나무입니다.
여기부터 조금 더
옛사람의 숨은 옅어질까
지구 전체에 고르게 퍼지고 나면 더 퍼질 데가 없어서 옅어지는 건 멈춥니다. 대신 성분마다 운명이 갈립니다. 이산화탄소는 몇 해 안에 나무와 바다로 빨려 들어갑니다. 는 매우 안정해서 공기 속에 아주 오래 머물고, 산소도 한 분자가 수천 년은 공기 속을 떠돕니다. 그래서 옛사람의 숨 가운데 지금 내 숨에 섞여 드는 것은 주로 질소와 산소이고, 그 숨의 탄소는 이미 나무나 바다로 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같은 질문을 한 사람들
나무의 무게가 어디서 오는지 처음 실험으로 따져 본 사람은 17세기 벨기에의 판 헬몬트입니다. 흙의 무게를 달아 화분에 담고 작은 버드나무를 심은 뒤 물만 주며 다섯 해를 길렀습니다. 버드나무는 몇십 배로 무거워졌는데 흙은 한 줌도 줄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무가 물로 만들어졌다고 결론 냈습니다. 절반만 맞았습니다. 나머지 절반은 눈에 보이지 않던 공기였습니다.
공기 속 이산화탄소가 숨 쉬듯 오르내린다는 것을 처음 잰 사람은 미국의 찰스 킬링입니다. 하와이 산꼭대기에서 잰 그래프는 봄여름이면 내려가고 가을겨울이면 올라갑니다. 북반구의 숲이 잎을 틔워 공기를 들이마시고, 잎을 떨구며 내쉬는 것입니다. 지구가 통째로 숨을 쉬는 모습입니다.
옛사람의 마지막 숨이 지금 우리 숨에 섞여 있다는 계산은 과학자들 사이에 오래 내려온 퍼즐입니다. 서양에서는 카이사르의 숨으로 알려져 있고, 과학 저술가 샘 킨은 이 이야기로 문을 여는 공기의 역사책 『Caesar's Last Breath』를 썼습니다. 한국에서는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가 방송 〈알쓸신잡〉 첫 회 통영 편에서, 고등학교 수학여행 버스 안에서 친구들과 이순신 장군의 숨이 지금 공기에 섞여 있을지 계산해 봤다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아직 모르는 것
지금은 숲과 바다가 사람이 내놓는 이산화탄소의 절반쯤을 받아 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받아 줄 수 있을지, 더워지는 바다와 마르는 숲이 언제부터 덜 받아 주게 될지는 과학자들이 지금도 재고 있는 문제입니다.
영화에서는
다비드는 삶이 남기는 패턴이 빛 속에, 공기 속에, 돌 속에, 살아 있는 물질 속에 있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한 사람이 죽어 가며 내쉰 숨의 탄소를 곁의 올리브나무가 들이마셔 제 몸의 일부로 삼는 것까지는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과학입니다. 그 나무 속에 그 사람의 기억이 남아 있다는 것부터가 영화의 상상입니다.
수목장이 아니어도 제 숨으로 나무들이 살아간다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감독
남은 질문내가 오늘 내쉰 숨의 탄소는 몇 년 뒤 어느 나무의 나이테가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