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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풀이

실수로 오염된 접시 — 세균은 우리보다 빨리 배운다

휴가를 다녀온 실험실에 곰팡이가 핀 접시가 있었습니다. 곰팡이 둘레만 세균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처음 쓴 항생제는 이렇게 시작했고, 그 약을 발견한 사람은 노벨상 연설에서 이미 경고했습니다. 함부로 쓰면 세균이 배울 것이라고. 그 말은 그대로 맞았습니다.

이 글이 꿰는 질문들 25분 분량갱신 2026-09-06

곰팡이의 무기를 빌리다

5편에서 항생제가 장 이웃의 절반을 없앤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약은 우리가 발명한 것이 아닙니다. 곰팡이와 세균은 수억 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밥을 두고 싸워 왔고, 곰팡이는 세균을 물리치는 물질을 만들어 왔습니다. 사람은 그 무기를 빌린 것뿐입니다.

플레밍이 본 맑은 고리는 그 무기가 퍼진 자리였습니다. 그는 곰팡이가 내놓는 물질에 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3편 얼굴 도감의 푸른곰팡이, 붓처럼 포자를 단 그 곰팡이입니다.

10년이 걸린 이유

발견은 1928년인데 약이 된 것은 1940년대입니다. 그 사이 논문은 거의 묻혀 있었습니다. 플레밍은 페니실린을 순수하게 뽑아내지 못했고, 뽑아낸 것도 금방 힘을 잃었습니다. 발견과 약은 다른 일입니다.

옥스퍼드의 플로리와 체인이 정제에 성공했고, 미국이 대량생산 방법을 만들었습니다. 2차대전 부상병들이 그 약으로 살았습니다. 그때까지 세균에 감염되면 몸이 이겨 내기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습니다. 작은 상처로 죽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약은 어떻게 세균만 죽이나

3편에서 항생제가 세균의 벽을 부수는 약이라고 했습니다. 조금 더 정확히 하면 이렇습니다. 세균에게는 사람 세포에 없는 것이 있습니다. 단단한 바깥벽입니다. 페니실린은 세균이 벽을 새로 지을 때 벽돌을 못 쌓게 막습니다. 벽 없이 커진 세균은 스스로 터집니다.

사람 세포에는 그 벽이 없으니 아무 일도 안 일어납니다. 상대에게만 있고 나에게는 없는 것을 노리는 것, 좋은 약의 조건입니다. 3편에서 곰팡이 병이 고치기 어렵다고 한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곰팡이는 우리와 닮아서 노릴 데가 적습니다.

세균이 배운다

페니실린이 나오고 사람들은 세균과의 싸움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세균은 20분마다 둘로 갈라집니다. 갈라질 때마다 설계도를 베끼는데, 가끔 잘못 베낍니다. 그 실수 중 하나가 우연히 약을 막아 내는 능력이면, 그 한 마리만 살아남습니다. 그리고 하룻밤이면 수십억이 됩니다. 약이 강한 놈을 만든 것이 아니라 약이 나머지를 치워 준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세균은 그 능력을 옆집에 넘겨줄 수 있습니다. 종이 달라도 넘어갑니다. 사람으로 치면 옆 사람과 악수하다가 그 사람의 재능이 옮아오는 셈입니다.

이것이 가능하다는 증거는 페니실린과 같은 해에 나왔습니다. 1928년, 그리피스는 죽은 세균과 살아 있는 순한 세균을 섞었더니 순한 쪽이 사나운 쪽으로 바뀌는 것을 봤습니다. 죽은 것에서 무언가가 넘어간 것입니다. 그 무언가가 라는 것은 16년 뒤에 밝혀집니다.

약을 끝까지 먹으라는 말

의사가 항생제를 처방하며 좋아져도 끝까지 먹으라고 합니다.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사흘 먹고 나아진 것 같아 그만두면, 약에 약한 놈들만 죽고 좀 버티던 놈들이 남습니다. 남은 놈들이 다시 늘어나면 다음번엔 그 약이 안 듣습니다.

3편에서 감기에 항생제를 먹어 봐야 소용없다고 했지요. 소용없는 정도가 아닙니다. 장 이웃을 죽이면서 남은 세균에게 연습 기회를 주는 일입니다.

약을 끝까지왜

중간에 그만두면 버티던 놈만 남는다

감기엔 안 먹기왜

바이러스엔 안 듣고 이웃만 죽는다

남의 약 안 먹기왜

엉뚱한 균을 연습시킨다

남은 약 안 두기왜

다음에 감으로 먹게 된다

여기부터 조금 더

가장 많이 쓰이는 곳은 병원이 아니다

세계에서 만들어지는 항생제의 상당량은 사람이 아니라 가축이 먹습니다. 병을 고치려고만이 아니라 좁은 우리에서 병이 안 나게, 그리고 살이 잘 붙게 조금씩 계속 먹입니다. 세균에게는 매일 연습 시간이 주어지는 셈입니다. 유럽은 이 용도를 금지했고 다른 나라들도 줄이는 중입니다.

이미 여러 항생제가 안 듣는 세균이 병원에서 돌고 있습니다. 새 항생제는 잘 안 나옵니다. 몇 년 쓰다 안 듣게 되는 약을 회사가 개발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3편 얼굴 도감의 그 달 착륙선, 세균만 잡아먹는 바이러스인 파지를 약으로 쓰려는 연구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세균의 오랜 천적을 데려오는 것입니다.

항생제는 세균에게만 듣습니다. 그럼 바이러스는 어떻게 막을까요. 병에 걸리기 전에 몸을 미리 연습시키는 방법이 있습니다. 소젖 짜는 여인들의 손에서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다음 편입니다.

남은 질문약을 쓰면 그 약이 안 듣는 놈이 늘어난다면 — 우리는 이 싸움을 이길 수 있을까요, 아니면 계속 비겨야 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