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 ATLAS· 과학 아틀라스

개념 풀이

바이오 의약품 — 만들 수 없으면 만들게 시킨다

앞 편에서 약은 자물쇠에 맞는 열쇠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열쇠는 너무 크고 복잡해서 사람이 손으로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만들 줄 아는 것에게 시킵니다. 대전의 생명공학연구원이 다루는 일이 이것입니다.

이 글이 꿰는 질문들 33분 분량갱신 2026-09-09

어떤 약은 만들 수가 없다

앞 편에서 본 약들은 아주 작은 였습니다. 화학자가 재료를 붙여 가며 만들 수 있는 크기입니다.

그런데 인슐린은 입니다. 수십 개가 정해진 순서로 이어진 다음, 정해진 모양으로 접혀 있어야 일을 합니다. 순서만 맞으면 되는 게 아니라 접힌 모양까지 맞아야 합니다.

그래서 시켜서 만든다

세포는 에 적힌 순서대로 단백질을 만듭니다. 유전자가 설명서고 세포가 공장인 셈입니다.

그러면 방법이 보입니다. 사람의 인슐린 설명서를 세균에게 넣어 주는 것입니다. 세균은 그것이 남의 설명서인지 모르고 그냥 읽어서 만듭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인슐린을 걷어 내면 됩니다.

이것이 바이오 의약품입니다. 화학으로 만든 약이 아니라 생물에게 만들게 한 약입니다. 요즘 나오는 항암제와 자가면역 치료제 상당수가 이런 방식으로 나옵니다.

세포를 기른다는 일

말은 간단한데 실제로는 세포를 길러야 합니다. 온도를 맞추고 먹이를 주고 노폐물을 빼 주면서, 다른 것이 섞여 들어오지 않게 해야 합니다.

공장에 가 보면 커다란 통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그 안에서 세포가 자라고 있습니다. 약을 만드는 곳인데 화학 공장보다 공장에 가깝습니다. 술이나 장을 담그는 일과 뿌리가 같습니다.

여기부터 조금 더

세균으로는 안 되는 것들

세균에게 시키는 방법이 늘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단백질 중에는 만들어진 다음 겉에 당을 붙여야 제 일을 하는 것이 많은데, 세균은 그 붙이는 법을 모릅니다. 접는 솜씨도 사람 것과 다릅니다.

그래서 더 큰 단백질은 동물의 세포를 공장으로 씁니다. 기르기가 훨씬 까다롭고 느리고 비쌉니다. 를 약으로 쓰는 요즘 치료제들이 비싼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같은 약을 만들어도 똑같지 않다

여기서 이 분야에만 있는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설명서를 고친다는 것

설명서를 읽게 시키는 데서 한 걸음 더 가면 설명서를 고치는 일이 됩니다. 유전자의 특정 자리를 찾아가 잘라 내거나 바꿔 넣는 도구가 나오면서 이 일이 훨씬 쉬워졌습니다.

쉬워졌다는 것이 곧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병을 고치려고 어떤 사람의 세포를 고치는 것과, 태어날 아이의 설명서를 고쳐 그 아이의 자손에게까지 남기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이 구분을 두고 세계가 아직 합의 중입니다. 기술이 답을 주지 않는 자리입니다.

이 일을 하는 사람이 되려면

생물학과만 있는 곳이 아닙니다.

  1. 어떤 유전자를 넣고 뺄지 설계하는 사람 — 분자생물학 쪽입니다.
  2. 세포를 실제로 기르고 살려 내는 사람 — 세포배양 쪽입니다. 손이 좋아야 하는 일입니다.
  3. 그 통을 수천 배로 키워 공장으로 만드는 사람 — 생물공정과 화학공학 쪽입니다.
  4. 나온 물건이 정말 그 물건인지 확인하는 사람 — 분석화학과 품질관리 쪽입니다.
  5. 쏟아지는 유전자 자료를 다루는 사람 — 전산과 통계 쪽입니다.
  6. 실험동물을 돌보고 다루는 사람 — 수의와 실험동물 쪽입니다.

두 번째 줄을 눈여겨보시면 좋겠습니다. 세포를 기르는 일은 논문으로 배울 수 없는 몫이 큽니다. 오염 하나에 몇 주치 실험이 날아가기 때문에, 손이 야무진 사람이 대접받는 자리입니다. 학위보다 숙련이 앞서는 일이 과학 안에도 있습니다.

이 일을 하는 곳이 대전 유성구의 한국생명공학연구원입니다.

남은 질문만들 수 없는 것을 만들 줄 아는 것에게 시키는 것이 방법이라면 — 우리가 못 한다고 접어 둔 일 중에 시킬 상대를 못 찾은 것뿐인 일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