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풀이
신약 — 약 한 알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머리가 아플 때 삼키는 알약 하나. 그 안에 든 것은 누가 어떻게 찾아냈을까요. 그리고 왜 그렇게 오래 걸릴까요. 대전에는 후보 물질을 만드는 곳, 약재의 성분을 확인하는 곳, 그리고 그것이 해로운지 시험하는 곳이 따로 있습니다. 셋이 나뉘어 있다는 것 자체가 이 일의 성격입니다.
약은 열쇠다
우리 몸속에는 이 수만 가지 있습니다. 저마다 모양이 다르고 하는 일이 다릅니다. 어떤 것은 신호를 받아 통증을 느끼게 하고, 어떤 것은 세균이 자기 몸을 만들 때 씁니다.
약은 그 단백질에 가서 딱 들어맞는 열쇠입니다. 들어맞으면 그 단백질이 하던 일을 막거나 반대로 부추깁니다. 그래서 약을 찾는다는 것은 자물쇠를 먼저 정하고 그 구멍에 맞는 열쇠를 찾는 일입니다.
열쇠는 어디서 오나
옛날에는 자연에서 왔습니다. 버드나무 껍질을 씹으면 열이 내린다는 것을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알았고, 나중에 그 안에서 실제로 일하는 분자를 찾아냈습니다. 곰팡이에서 나온 것도 있습니다.
지금은 자연에서 찾는 것과 만들어 보는 것을 같이 합니다. 후보가 될 만한 분자를 수만 가지 늘어놓고 자물쇠에 하나씩 대어 봅니다. 조금이라도 맞는 것이 나오면 그 모양을 조금씩 고쳐 가며 더 잘 맞게 다듬습니다. 대전의 화학연구원이 하는 일이 이 다듬는 일입니다.
듣는 것과 안전한 것은 다르다
여기서 대부분의 사람이 놓치는 대목이 나옵니다. 자물쇠에 잘 맞는 열쇠를 찾았다고 약이 되는 게 아닙니다.
먹어서 몸에 흡수되어야 하고, 목표한 자리까지 가야 하고, 가는 동안 부서지지 말아야 하고, 일을 마친 뒤에는 몸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른 곳을 망가뜨리지 않아야 합니다.
이 조건들을 다 통과하는 것이 워낙 드물어서, 처음 후보로 뽑힌 것 수천 개 가운데 약이 되는 것은 하나 나올까 말까 합니다.
여기부터 조금 더
해로운지 어떻게 아나
세상에 해롭지 않은 물질은 없습니다. 물도 지나치게 마시면 사람이 상합니다. 그러니 질문은 이것이 해로운가가 아니라 얼마부터 해로운가입니다.
양만 보는 것도 아닙니다. 한 번에 많이 들어갔을 때와 조금씩 오래 들어갔을 때가 다르고, 숨으로 들이마셨을 때와 삼켰을 때가 다릅니다. 그래서 시험이 여러 갈래로 나뉩니다.
이 일은 약에만 쓰이는 게 아닙니다. 새로 만든 화학물질, 농약, 생활용품에 들어가는 성분이 다 이런 시험을 거쳐야 세상에 나옵니다.
오래 써 왔다는 것은 증명이 아니다
한약재도 같은 잣대를 받습니다. 대전의 한의학연구원이 하는 일 가운데 큰 몫이 이것입니다. 어떤 약재에 실제로 무엇이 들어 있는지 성분을 갈라내고, 그 성분이 무슨 일을 하는지 확인하는 일입니다.
오래 써 왔다는 사실은 그것이 듣는다는 증명이 되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오래 써 온 것 중에 안 듣는 것도 많았고 해로운 것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오래 써 왔다는 사실이 무시할 이유도 되지 못합니다. 그 안에 실제로 일하는 분자가 들어 있던 경우가 적지 않았으니까요. 버드나무 껍질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하는 일은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확인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들었는지 재고, 정말 듣는지 시험하고, 얼마부터 해로운지 찾는 것입니다.
왜 셋으로 나뉘어 있나
만드는 곳과 시험하는 곳이 나뉘어 있는 이유는 원자로 편에서 본 것과 같습니다. 자기가 만든 것을 자기가 통과시키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약은 아픈 사람이 먹는 것이고, 그 사람은 그것을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대신 확인해 주기로 한 약속이 이 구조입니다.
이 일을 하는 사람이 되려면
약 하나에 붙는 공부가 놀랄 만큼 여럿입니다.
- 분자를 실제로 만들어 내는 사람 — 유기화학 쪽입니다.
- 어느 단백질을 노릴지 정하는 사람 — 생물학과 생명공학 쪽입니다.
- 몸에 들어가서 어떻게 돌아다니는지 따지는 사람 — 약학과 약리 쪽입니다.
- 얼마부터 해로운지 시험하는 사람 — 독성학과 수의학 쪽입니다.
- 사람에게 시험한 결과가 우연이 아님을 가려내는 사람 — 통계 쪽입니다.
- 분자를 알약이나 주사로 만드는 사람 — 제제와 화학공학 쪽입니다.
화학을 좋아해야만 들어가는 분야가 아닙니다. 통계를 잘하는 사람, 동물을 다루는 사람, 공장을 설계하는 사람이 다 필요합니다. 약 하나가 나오는 데 십 년 넘게 걸리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이 모든 단계를 차례로 통과해야 하니까요.
남은 질문독과 약을 가르는 것이 물질이 아니라 양이라면 — 우리가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갈라 놓은 것들 중에 사실은 양의 문제인 것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