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풀이
로봇 — 왜 체스는 이기는데 컵은 못 집을까
로봇은 사람보다 계산을 잘하고 체스도 이깁니다. 그런데 낯선 부엌에서 컵을 집어 오라고 하면 못 합니다. 다섯 살 아이가 하는 일을요. 어려움이 우리 생각과 거꾸로 뒤집혀 있는 것인데, 그 이유를 알면 대전의 기계연구원이 무엇과 씨름하는지가 보입니다.
어려움이 뒤집혀 있다
우리는 계산을 어렵다고 여기고 걷기와 집기를 쉽다고 여깁니다. 학교에서 수학은 배워야 했지만 걷는 건 아무도 안 가르쳐 줬으니까요.
그런데 기계에게는 정반대입니다. 계산은 규칙이 분명해서 옮겨 적기만 하면 됩니다. 걷고 집는 것은 규칙이 어디에도 안 적혀 있습니다.
걷는다는 것은 계속 넘어지는 것
두 발로 서 있는 것은 사실 아슬아슬한 일입니다. 발바닥은 작고 몸은 높습니다. 가만히 서 있는 동안에도 몸은 계속 조금씩 기울고 있고, 우리는 그때마다 무의식적으로 고쳐 잡습니다.
걷는 것은 한 걸음 더 나갑니다. 일부러 앞으로 넘어진 다음 넘어지기 전에 발을 내미는 일입니다. 그것을 왼발 오른발로 되풀이하는 것이 걸음입니다.
편에서 위성이 계속 떨어지면서 계속 빗나간다고 했는데, 걷기도 비슷합니다. 계속 넘어지면서 계속 발을 내미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미는 것은 엄지발가락이다
한 걸음을 자세히 뜯어보면 마지막 순간이 따로 있습니다. 발이 땅에서 떨어지기 직전, 발끝으로 땅을 꾹 밀어 몸을 앞으로 보내는 순간입니다. 이 일을 엄지발가락이 합니다.
엄지발가락이 다른 발가락과 나란히 붙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침팬지는 다릅니다. 침팬지의 엄지발가락은 우리 엄지손가락처럼 옆으로 벌어져 있습니다. 나뭇가지를 쥐기에는 훨씬 좋지만, 그 자세로는 땅을 뒤로 밀어낼 수가 없습니다. 침팬지가 두 발로 걸을 때 뒤뚱거리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발 하나에는 뼈가 스물여섯 개, 관절이 서른 개가 넘게 들어 있습니다. 가운데가 아치처럼 휘어 있어서 딛는 순간 눌렸다가 뗄 때 펴집니다. 용수철처럼 힘을 잠깐 저장했다 돌려주는 것입니다.
이걸 알고 나서 로봇 발을 보면 초라합니다. 대부분 판 한 장입니다. 관절이 없으니 발끝으로 미는 마지막 동작을 못 하고, 발바닥 전체를 통째로 들었다 놓는 식으로 걷습니다. 로봇 걸음이 뒤뚱거리고 느리고 를 많이 쓰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발가락에 관절을 하나쯤 넣어 보는 연구가 나오고 있습니다.
집는다는 것
컵을 집는 일에는 힘 조절이 들어갑니다. 약하면 떨어뜨리고 세면 깨뜨립니다. 달걀과 망치를 같은 손으로 집으면서 우리는 힘을 바꿉니다. 생각하지 않고요.
그리고 이 있어야 합니다. 미끄러운 컵은 훨씬 세게 쥐어야 하는데, 얼마나 미끄러운지는 만져 봐야 압니다. 계산으로 미리 알 수가 없습니다.
여기부터 조금 더
그래서 계속 재면서 고친다
미리 다 계산해서 딱 맞히는 방법은 통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계산대로 안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바닥이 조금 기울어 있고, 컵이 생각보다 무겁고, 손이 조금 미끄러집니다.
그래서 쓰는 방법이 입니다. 지금 어떤 상태인지 재고, 목표와 얼마나 어긋났는지 보고, 그만큼 고칩니다. 이것을 아주 빠르게 되풀이합니다. 로봇이 걷는다는 것은 이 되풀이를 1초에 수백 번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공장 로봇은 왜 잘하나
자동차 공장의 로봇 팔은 사람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합니다. 같은 로봇인데 왜 이쪽은 잘할까요.
환경이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부품이 언제나 같은 자리에 같은 방향으로 옵니다. 그러면 되먹임이 별로 필요 없습니다. 시킨 대로만 하면 됩니다.
재지 못하면 만들지 못한다
기계연구원의 다른 축은 정밀 가공입니다. 아주 정확하게 깎고 다듬는 일입니다.
여기서 이야기와 만납니다. 머리카락 굵기의 몇십 분의 일까지 맞추려면 그만큼 정확하게 잴 수 있어야 합니다. 재는 정확도가 만드는 정확도의 천장이 됩니다. 표준을 지키는 일이 왜 산업의 바닥에 깔려 있는지가 여기서 보입니다.
이 일을 하는 사람이 되려면
로봇 한 대에 붙는 공부가 여럿입니다.
- 관절과 뼈대를 설계하는 사람 — 기계공학 쪽입니다.
- 넘어지지 않게 붙잡아 주는 사람 — 제어공학 쪽입니다.
- 지금 상태를 재는 눈과 살갗을 만드는 사람 — 전자와 센서 쪽입니다.
- 무엇을 볼지 판단하게 하는 사람 — 컴퓨터와 인공지능 쪽입니다.
- 가볍고 튼튼한 몸을 찾는 사람 — 재료공학 쪽입니다.
- 설계를 실제 부품으로 깎아 내는 사람 — 가공과 조립 현장입니다.
마지막 줄이 늘 그렇듯 중요합니다. 도면대로 깎아 내는 사람이 없으면 로봇은 화면 속에만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분야에는 손으로 만져 봐야 아는 몫이 유난히 큽니다. 왜 이 관절이 덜컹거리는지는 계산보다 만져 보는 쪽이 빠를 때가 많습니다.
이 일을 하는 곳이 대전 유성구의 한국기계연구원입니다.
남은 질문우리가 쉽다고 느끼는 일일수록 오래 갈고닦은 것이라면 — 지금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하고 있는 일 중에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