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 ATLAS· 과학 아틀라스

개념 풀이

표준 — 1킬로그램은 왜 1킬로그램인가

자로 길이를 잽니다. 그런데 그 자는 무엇을 보고 만들었을까요. 그 자를 만든 자는요. 이 질문을 끝까지 따라 올라가면 세상 어딘가에 있는 기준 하나에 닿습니다. 그 기준이 흔들리면 어떻게 될까요. 대전에 그 흔들림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글이 꿰는 질문들 34분 분량갱신 2026-09-09

옛날에는 맨 위에 물건이 하나 있었다

오랫동안 그 답은 물건이었습니다. 이 기준 하나하나를 라고 부릅니다. 파리 근처 금고에 백금으로 만든 막대가 하나 있었고, 그 막대의 길이가 1미터였습니다. 옆에는 백금으로 만든 작은 원통이 있었고, 그 원통의 무게가 1킬로그램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자와 모든 저울은 결국 그 두 물건을 베낀 것이었습니다. 나라마다 사본을 받아 갔고, 그 사본을 다시 베껴서 공장으로 병원으로 시장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물건이 변했다

백 년쯤 지나 사본들을 모아 원본과 맞춰 보았더니 서로 조금씩 어긋나 있었습니다. 아주 조금이었습니다. 머리카락 한 올보다 훨씬 가벼운 정도요. 그래도 어긋난 것은 어긋난 것입니다.

공기 중의 무언가가 붙었을 수도 있고, 닦는 과정에서 조금 깎였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물건을 버렸다

해결책은 기준을 물건에서 자연으로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금고에 넣어 둘 필요도 없고, 닳지도 않고, 어느 나라에서 재도 똑같이 나오는 것으로요.

길이가 먼저 바뀌었습니다. 지금 1미터는 백금 막대의 길이가 아니라 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나아가는 거리입니다. 빛의 속도는 우주 어디서나 같으니, 화성에서 재도 1미터는 1미터입니다.

자가 서로 다르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재 보면 압니다. 아래 판에서 눈금이 다른 자로 같은 막대를 재 보고, 내가 읽은 숫자를 그대로 옆 사람에게 불러 주면 어떤 물건이 오는지 보세요.

도구 같은 자로 재기 — 1킬로그램은 누가 정하나 눈금이 서로 다른 자로 같은 막대를 재 보고, 내가 잰 숫자를 그대로 옆 사람에게 불러 줍니다. 단위 하나를 다르게 읽어 우주선을 잃은 일을 손잡이로 따라가 보고, 세상의 모든 잴 거리가 나오는 일곱 단위를 하나씩 눌러 지금은 무엇으로 정하는지 확인합니다.

여기부터 조금 더

시간은 원자의 떨림으로

1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는 지구가 한 바퀴 도는 시간을 쪼개서 정했습니다. 그런데 지구의 자전은 아주 조금씩 느려지고 들쭉날쭉합니다. 기준으로 삼기에는 성실하지 못한 시계였습니다.

지금 1초는 세슘이라는 가 정해진 횟수만큼 떨리는 데 걸리는 시간입니다. 아흔한억 번쯤입니다. 원자는 어디에 있든 같은 박자로 떨리기 때문에 이보다 성실한 시계가 없습니다. 이것이 원자시계입니다.

마지막까지 물건이었던 것

킬로그램은 가장 오래 버텼습니다. 다른 단위들이 하나씩 자연 상수로 옮겨 가는 동안에도 킬로그램만은 파리의 그 원통이었습니다. 세계에서 마지막까지 물건에 매여 있던 단위입니다.

이것이 바뀐 것이 2019년입니다. 이제 킬로그램은 플랑크 상수라는 값에서 나옵니다. 무게를 전자기력과 겨루게 하는 저울로 잽니다. 한쪽에 물체를 올리고 반대쪽을 코일에 흐르는 전기의 힘으로 버티게 해서, 얼마만큼의 전기가 필요한지로 무게를 알아내는 방식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무게를 전기로 재는 셈입니다. 저울 이야기가 갑자기 전자기 이야기가 되는 것이 이 단위의 묘미입니다.

이게 왜 중요한가

표준이 흔들리면 무엇이 흔들릴까요.

  1. 거래가 흔들립니다. 파는 쪽의 1킬로그램과 사는 쪽의 1킬로그램이 다르면 값을 매길 수가 없습니다.
  2. 공장이 흔들립니다. 반도체는 머리카락 굵기의 몇만 분의 일을 다룹니다. 자가 조금만 달라도 부품이 안 맞습니다.
  3. 병원이 흔들립니다. 방사선 치료에서 쬐는 양이 조금만 어긋나도 사람에게 해가 됩니다.
  4. 길 찾기가 흔들립니다. 위성으로 위치를 찾는 일은 사실 시간을 재는 일입니다. 시계가 어긋나면 자리가 어긋납니다.

표준은 눈에 안 보이지만 사회의 바닥에 깔려 있는 약속입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때가 잘 굴러가고 있는 때입니다.

우리나라의 맨 위

대전 유성구의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그 맨 위를 지킵니다. 우리가 쓰는 표준시도 여기서 나옵니다.

병원의 저울, 주유소의 계량기, 공장의 측정기가 다 어딘가에서 검사를 받습니다. 그 검사기관은 또 위쪽 기관에서 검사를 받고,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이 연구원에 닿습니다. 그리고 이 연구원은 세계의 다른 나라 연구소들과 서로 맞춰 봅니다. 사슬이 국경에서 끊기지 않도록요.

눈에 안 띄는 일입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일도 아니고 뉴스가 되는 일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 사슬이 끊기면 나라 안의 모든 숫자가 의미를 잃습니다.

이 일을 하는 사람이 되려면

재는 일에도 갈래가 여럿입니다.

  1. 원자시계를 만들고 더 정확하게 만드는 사람 — 원자물리와 광학 쪽입니다.
  2. 빛으로 길이를 재는 사람 — 레이저와 정밀광학 쪽입니다.
  3. 무게를 전기로 겨루는 저울을 다루는 사람 — 전자기와 정밀기계 쪽입니다.
  4. 온도와 압력처럼 재기 까다로운 것들을 맡는 사람 — 열물리와 계측 쪽입니다.
  5. 그 기준을 세상의 저울과 자에 내려보내는 사람 — 교정과 인증 쪽입니다.

마지막 줄이 이 분야의 진짜 크기입니다. 연구원 안에서만 쓰이는 정확함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 정확함이 동네 정육점의 저울까지 내려가야 표준이 됩니다.

남은 질문기준 자신은 잴 수 없다면 — 우리가 옳고 그름을 재는 데 쓰는 기준들은 무엇에 대어 보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