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풀이
CDMA — 같은 자리에서 동시에 말해도 섞이지 않는 법
지하철 한 칸에서 스무 명이 동시에 통화를 합니다. 목소리가 뒤섞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덕에서 세계 처음으로 상용화한 이 방식은 자리를 나눠 쓰는 대신 모두가 동시에 말하게 하고, 대신 저마다 다른 말투를 줍니다. 그리고 개발한 것과 처음으로 해낸 것은 다른 일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목소리를 전파에 싣는다는 것
먼저 전화가 무슨 일을 하는지 짚고 가겠습니다. 목소리는 공기의 떨림입니다. 이 떨림이 입니다. 이 떨림을 전기의 떨림으로 바꿔 전선에 실은 것이 유선 전화였습니다.
전선 없이 보내려면 전파에 실어야 합니다. 전파는 눈에 안 보이지만 과 같은 식구입니다. 파장이 훨씬 길 뿐입니다.
여럿이 나눠 쓰는 세 가지 방법
문제는 하늘이 하나라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쓰려면 어떻게든 나눠 써야 합니다. 방법이 세 가지 있습니다.
- 주파수로 나눈다 — 라디오 방송국처럼 사람마다 다른 채널을 준다.
- 시간으로 나눈다 — 같은 채널을 아주 짧게 쪼개 돌아가며 쓴다. 너무 빨라서 사람은 끊긴 줄 모른다.
- 말투로 나눈다 — 나누지 않는다. 모두 동시에 말하되 저마다 다른 말투를 준다.
앞의 둘은 자리를 나누는 방식입니다. 방을 여러 칸으로 쪼개거나, 한 칸을 시간표대로 돌려 쓰는 것이죠. 세 번째가 CDMA입니다.
말투란 무엇인가
여기서 말투에 해당하는 것이 코드입니다. 보낼 신호에 미리 정해 둔 무늬를 곱해서 내보냅니다. 그러면 신호가 넓게 퍼져 얇아집니다. 남이 들으면 그냥 잡음처럼 들릴 만큼요.
받는 쪽에서 같은 무늬를 한 번 더 곱합니다. 그러면 내 신호는 다시 또렷하게 모이고, 다른 사람 신호는 여전히 흩어진 채로 남습니다. 무늬가 맞은 것만 살아나고 나머지는 웅성거림이 되는 겁니다.
이 방식에는 덤이 따라옵니다. 코드를 모르면 잡음으로만 들리니 몰래 듣기가 어렵고, 사람이 한 명 늘어도 채널을 새로 뜯어 만들 필요가 없어서 같은 하늘에 훨씬 많은 사람을 담을 수 있습니다.
여기부터 조금 더
그렇게 좋으면 왜 아무도 안 했나
이론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습니다. 문제는 만들기가 지독하게 까다로웠다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고약한 것이 목소리 크기 문제였습니다.
모두가 동시에 말하는 방식이니, 기지국 바로 앞에 선 사람의 신호가 크게 들어오면 멀리 있는 사람의 신호는 그 아래에 묻혀 버립니다. 파티에서 내 귀에 대고 소리치는 사람이 있으면 건너편 대화가 안 들리는 것과 같습니다.
미국의 한 작은 회사가 이 방식을 들고 나왔지만 정작 미국 업계는 외면했습니다. 이미 시간으로 나누는 방식에 큰돈을 넣어 둔 데다, 상용화된 전례가 없어 위험이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개발한 것과 처음 해낸 것
우리나라 사정은 달랐습니다. 앞선 나라들에 시간으로 나누는 방식의 기술을 넘겨달라고 했다가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원천기술이 없는 나라라는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대덕의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아무도 가지 않은 쪽을 골랐습니다. 그 미국 회사와 손을 잡고 상용화에 뛰어든 것입니다. 도면이 오기를 기다릴 수 없어 큰 틀만 받고 세부 설계는 스스로 해결해 나갔습니다. 그전에 전화 교환기를 만들어 본 경험이 밑천이 되었습니다.
시제품에서 첫 통화가 터진 것이 1994년 봄이고, 세상 어디에서도 굴러가지 않던 이 방식으로 실제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 1996년입니다. 세계에서 처음이었습니다.
남은 것은 통화 방식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장비와 단말기를 만드는 산업이 통째로 생겼고, 그 뒤로도 휴대인터넷과 5세대 이동통신에서 비슷한 일이 이어졌습니다.
이 일을 하는 사람이 되려면
통신은 전공 하나로 굴러가지 않습니다.
- 신호에 무늬를 입히고 걷어 내는 방법을 다루는 사람 — 전자·통신공학의 신호처리 쪽입니다.
- 전파가 건물과 지형에서 어떻게 꺾이고 약해지는지 재는 사람 — 전파공학 쪽입니다.
- 그 계산을 손톱만 한 칩에 집어넣는 사람 — 반도체와 회로 설계 쪽입니다.
- 기계들끼리의 약속을 짜고 소프트웨어로 옮기는 사람 — 컴퓨터공학 쪽입니다.
- 그 약속을 세계 표준으로 만드는 사람 — 회의와 문서로 싸우는 자리입니다.
마지막 줄이 뜻밖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통신에서는 기술을 만드는 것만큼 그 기술을 모두가 쓰기로 약속하게 만드는 일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아도 나 혼자 쓰면 전화가 안 걸리니까요.
이 일이 벌어진 곳이 대전 유성구의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입니다. 지도에서 대전을 열면 대덕연구단지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남은 질문자리를 나누지 않고도 섞이지 않게 하는 방법이 있었다면 — 우리가 당연히 나눠 써야 한다고 믿는 것들 중에 사실은 안 나눠도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