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 ATLAS· 과학 아틀라스

개념 풀이

과학수사 — 만지면 반드시 남는다

범인은 아무 흔적도 안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손을 댄 곳마다 땀이 찍히고, 옷이 스친 곳마다 섬유가 떨어지고, 침 한 방울이면 신분증이 됩니다. 원주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그 흔적을 읽는 곳입니다.

이 글이 꿰는 질문들 23분 분량갱신 2026-09-10

만지면 남는다, 스치면 바뀐다

백 년 전 프랑스의 한 수사관이 원칙을 하나 세웠습니다. 두 물체가 닿으면 반드시 서로 무언가를 주고받는다는 것입니다. 손이 컵에 땀을 남기고, 컵의 먼지가 손에 묻습니다.

과학수사는 이 한 줄 위에 서 있습니다. 흔적이 없는 게 아니라 아직 못 찾은 것입니다.

지문 — 손끝에 찍힌 도장

손가락 끝의 줄무늬는 엄마 배 속에서 피부가 접히며 생깁니다. 그래서 쌍둥이도 다르고, 평생 안 바뀝니다. 이것이 입니다.

DNA — 침 한 방울이 신분증이 되는 법

사람의 는 99.9퍼센트가 서로 같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한 사람을 집어낼까요. 전부 읽는 게 아닙니다.

DNA에는 같은 짧은 글자가 되풀이되는 자리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열 번, 어떤 사람은 열세 번. 그 반복 횟수가 사람마다 다르고 부모에게서 물려받습니다. 그런 자리 스무 곳쯤의 횟수만 셉니다. 이것이 입니다.

놀라운 대목은 여기입니다. 한 곳이 같을 확률은 꽤 높습니다. 그런데 스무 곳이 다 같을 확률은 지구 인구를 다 합쳐도 나오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스무 개 숫자가 신분증이 됩니다.

여기부터 조금 더

조각 하나를 수백만 개로

머리카락 한 올, 컵 가장자리의 침으로 되는 이유는 복사 기술 덕분입니다. DNA 한 조각을 넣고 온도를 올렸다 내렸다 하면 한 번에 두 배씩 늘어납니다. 서른 번이면 십억 배입니다.

코로나 검사에 쓰던 PCR이 바로 이것입니다. 검사와 수사가 같은 기계를 씁니다.

흔적은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이 있다

여기서 정직하게 짚을 게 있습니다. 지문은 그 사람이 손을 댔다는 것까지만 말합니다. 언제 댔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DNA는 그 사람이 거기 있었다는 것까지만 말합니다. 무엇을 했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지문과 DNA만이 아니다

국과수가 하는 일은 훨씬 넓습니다.

  1. 약물과 독물 — 몸속에 무엇이 있었는지 15편의 질량분석으로 찾아냅니다. 마약 검사도 여기입니다.
  2. 부검 — 왜 죽었는지 몸이 말해 주는 것을 읽습니다.
  3. 총기와 화재 — 어디서 불이 시작됐는지, 어느 총에서 나온 탄인지.
  4. 디지털 — 지운 파일을 되살리고 휴대전화 기록을 읽습니다. 17편의 암호와 맞붙는 자리입니다.
  5. 교통사고 — 바퀴 자국과 찌그러진 정도로 속도와 순서를 되살립니다.
  6. 문서와 목소리 — 글씨가 누구 것인지, 녹음된 목소리가 누구 것인지.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사람이 말하지 않는 것을 물건이 말하게 하는 일입니다.

왜 원주에 있나

원래 서울에 있다가 2013년 강원도 원주로 옮겼습니다. 전국에 지방 분원이 다섯 곳 있어서 각 지역 경찰이 보낸 증거를 나눠 받습니다. 한 해에 들어오는 감정 의뢰가 수십만 건입니다.

이 일을 하는 사람이 되려면

드라마에서는 한 사람이 다 하지만 실제로는 분야마다 다른 사람입니다.

  1. DNA와 혈액을 다루는 사람 — 생명과학, 유전학입니다.
  2. 약물과 독물을 찾는 사람 — 화학, 약학입니다. 질량분석기를 다룹니다.
  3. 부검하는 사람 — 의사이고 그중에서도 법의학을 따로 배운 사람입니다. 국내에 몇십 명뿐입니다.
  4. 디지털 증거를 캐는 사람 — 컴퓨터공학, 정보보안입니다.
  5. 화재와 사고를 되살리는 사람 — 기계공학, 전기공학입니다. 실험실이 아니라 현장에서 일합니다.
  6. 증거를 보관하고 기록하는 사람 — 증거가 어디서 누구 손을 거쳤는지 빠짐없이 적는 일입니다. 이게 어긋나면 증거가 무효가 됩니다.

마지막 줄이 뜻밖의 자리입니다. 가장 눈에 안 띄지만 이 줄이 끊기면 앞의 모든 일이 법정에서 쓸모없어집니다. 꼼꼼함이 곧 실력인 자리입니다.

다섯째 줄도 그렇습니다. 불이 난 집과 찌그러진 차를 보고 순서를 되살리는 사람은 기계와 전기를 아는 사람입니다.

남은 질문물건은 거짓말을 못 하지만 다 말하지도 않습니다 — 그러면 마지막에 판단하는 몫은 누구에게 있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