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풀이
방사광가속기 — 골칫거리였던 빛이 보물이 되기까지
전자를 빠르게 돌리면 빛이 새어 나옵니다. 처음에는 에너지가 새는 골칫거리였습니다. 그런데 그 빛이 태양보다 밝고 파장을 고를 수 있다는 걸 알고 나서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포항에 그 빛을 만드는 장치가 두 대 있습니다.
돌리면 빛이 튄다
를 자석으로 휘게 하면 그 순간 빛을 바깥으로 내뿜습니다. 빠를수록 세고, 빛에 가까울수록 파장이 짧아져 X선까지 나옵니다. 이것을 이라고 합니다.
처음 이것을 본 사람들은 반기지 않았습니다. 가속기는 전자에 에너지를 실어 주는 장치인데, 그 에너지가 자꾸 빛으로 새어 나갔으니까요. 새는 구멍이었습니다.
그 빛으로 무엇을 보나
15편에서 파장보다 작은 것은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원자 사이의 간격은 눈에 보이는 빛의 파장보다 수천 배 작습니다. 그러니 원자를 보려면 그만큼 짧은 빛이 필요합니다. X선입니다.
결정 속 원자들은 촘촘하게 줄지어 있습니다. 거기에 X선을 쏘면 빛이 갈라져 겹치며 무늬를 만듭니다(). 그 무늬를 거꾸로 풀면 원자가 어디 있는지 나옵니다. DNA가 나선 모양이라는 것도 이 방법으로 알았습니다.
보통 X선으로도 됩니다. 다만 며칠 걸리고 큰 결정이 있어야 합니다. 방사광이면 몇 분에 끝나고 먼지만 한 결정으로도 됩니다. 그래서 신약 만드는 회사가 줄을 서서 씁니다. 약이 붙을 자리의 모양을 봐야 약을 설계할 수 있으니까요.
여기부터 조금 더
포항의 두 대
첫째는 전자를 둥근 고리 안에서 계속 돌리는 것입니다. 1994년에 세운 3세대 장치로, 우리나라 첫 대형 가속기였습니다. 고리 둘레에 실험 장소가 스무 곳 넘게 붙어 있어 동시에 여러 실험이 돌아갑니다.
둘째는 전자를 돌리지 않고 곧게 쏘는 것입니다. 2016년에 세운 4세대 장치입니다. 긴 자석 터널을 통과시키면 전자들이 박자를 맞춰 빛을 내고, 그 빛이 서로 겹쳐 번개처럼 짧고 센 X선이 됩니다. 이런 장치는 당시 세계에 세 대뿐이었습니다.
대전의 가속기와 무엇이 다른가
2편에서 본 중이온가속기는 무거운 원자핵을 밀어 부딪히게 합니다. 부수는 쪽입니다. 방사광가속기는 가벼운 전자를 밀어 빛을 짜냅니다. 비추는 쪽입니다.
같은 가속기라는 이름을 쓰지만 하는 일은 반대입니다. 하나는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고, 하나는 세상에 있는 것을 들여다봅니다.
장치가 아니라 시설이다
둘레 280미터 고리를 돌리려면 자석 수백 개가 머리카락 굵기보다 정밀하게 놓여 있어야 합니다. 건물이 조금만 기울어도 어긋납니다. 그래서 바닥이 따로 떠 있고 온도가 소수점까지 관리됩니다.
15편의 장비들처럼 이것도 혼자 쓰는 것이 아닙니다. 전국 대학과 기업이 실험 시간을 신청하고 심사를 거쳐 씁니다. 한 번 배정받으면 며칠 동안 밤낮없이 실험합니다. 빛이 켜져 있는 시간이 곧 돈입니다.
이 일을 하는 사람이 되려면
- 가속기 자체를 설계하고 돌리는 사람 — 가속기물리, 전자공학입니다. 국내에 수십 명뿐인 전문가입니다.
- 빛을 받아 실험하는 사람 — 화학, 생명, 재료, 약학 등 각자의 분야에서 옵니다.
- 자석과 진공을 지키는 사람 — 기계와 전기 설비입니다. 진공이 깨지면 빛이 멈춥니다.
- 방사선을 관리하는 사람 — 방사선 안전 자격이 필요한 자리입니다.
- 실험 결과를 푸는 사람 — 회절 무늬를 원자 배치로 바꾸는 것은 계산이라 수학과 프로그래밍입니다.
셋째 줄이 뜻밖의 자리입니다. 가속기의 진공 배관과 냉각수 배관을 지키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 실험도 못 합니다. 배관과 전기를 배운 사람이 그대로 이어지는 길이고, 가속기는 밤에도 돌아가니 그 사람들도 밤에 있습니다.
두 장치는 포항공과대학교 안에 있고, 포항가속기연구소가 운영합니다.
남은 질문버리려던 것이 보물이 됐다면 — 지금 우리가 골칫거리라고 부르는 것들 가운데 무엇이 다음 보물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