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풀이
모래가 스위치가 되기까지 — 반도체
1편의 스위치 수백억 개는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까요. 재료는 모래입니다. 만드는 법은 깎기가 아니라 빛으로 찍기입니다. 반도체가 왜 '반'도체인지, 왜 하필 자외선인지, 왜 이제 더 작게가 안 되는지.
통하는 것, 안 통하는 것, 그리고 어중간한 것
전기가 잘 통하는 것이 있습니다. 구리 전선. 전기가 안 통하는 것이 있습니다. 고무장갑. 그래서 전선은 구리로, 그 겉은 고무로 감쌉니다.
실리콘은 그 중간입니다. 잘 통하지도, 안 통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반'도체입니다. 그냥 두면 어중간해서 쓸데가 없어 보입니다.
성질을 다르게 만든 실리콘 두 종류를 맞붙이면 전기가 한쪽으로만 흐르는 문이 됩니다. 세 조각을 나란히 붙이고 가운데에 전기를 살짝 주면 문이 열리고, 끊으면 닫힙니다. 이것이 트랜지스터입니다. 1편에서 '전기가 누르는 스위치'라고 한 것의 정체가 이겁니다.
수백억 개를 어떻게 만드나 — 깎지 않고 찍는다
여기가 이 편의 놀라움입니다. 스위치를 하나씩 만들어 이으면 수백억 개는 절대 못 만듭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씁니다. 찍어냅니다. 도장 찍듯이, 사진 찍듯이.
- 모래를 녹여 순수한 실리콘 기둥을 뽑는다 — 굵은 원통을 얇게 썰면 원판(웨이퍼)이 된다. 이 원판 한 장에 칩 수백 개가 함께 만들어진다.
- 원판에 빛에 반응하는 약을 바른다 — 사진 필름과 같은 원리다. 빛을 받은 자리만 성질이 바뀐다.
- 회로 그림을 그린 유리판을 대고 빛을 쏜다 — 그림자가 진 곳은 그대로, 빛 맞은 곳만 씻겨 나간다. 그 자리에 불순물을 심는다.
- 이것을 수십 번 반복해 층층이 쌓는다 — 한 층은 스위치, 한 층은 전선, 또 한 층은 전선. 스위치 수백억 개가 한꺼번에 생긴다.
그러니까 칩은 조각하는 것이 아니라 빛으로 사진을 찍어 만드는 것입니다. 한 번 찍으면 원판 한 장에 칩 수백 개, 칩 하나에 스위치 수백억 개.
이 생각의 시작이 1958년입니다. 부품을 따로 만들어 전선으로 잇는 대신, 한 조각 위에 부품을 전부 만들어 버리자는 것이었습니다.
왜 하필 자외선인가
빛 시리즈에서 빛은 물결이고, 색깔은 물결의 크기라고 했습니다. 빨강은 큰 물결, 보라는 잔물결.
가는 선을 그리려면 잔물결이 필요합니다. 붓이 굵으면 가는 글씨를 못 쓰는 것과 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빛으로는 머리카락 굵기의 선도 못 그립니다. 그래서 보라 바깥의 자외선을 쓰고, 지금은 그보다 더 잔물결인 극자외선을 씁니다.
여기부터 조금 더
작게, 더 작게 — 그리고 벽
왜 자꾸 작게 만들까요. 작으면 세 가지가 좋아집니다. 한 원판에 더 많이 들어가서 싸지고, 전기가 갈 길이 짧아 빨라지고, 전기를 덜 먹습니다. 1편에서 '컴퓨터 역사의 절반은 스위치를 작게 만든 역사'라고 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제 벽이 보입니다. 지금 선의 굵기는 원자 수십 개 폭입니다. 더 가늘게 만들면 전기가 벽을 뚫고 새어 나갑니다. 원자보다 작게는 만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옆으로 줄이는 대신 위로 쌓습니다. 아파트처럼요. 다음 편에서 그 이야기를 합니다. 기억을 담는 칩이 왜 컴퓨터 전체의 병목이 됐고, 그걸 위로 쌓아서 어떻게 풀었는지.
남은 질문모래에서 나온 스위치 수백억 개가 손톱 위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만들었다'고 해야 할까요, '찍었다'고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