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 거중기
사람의 힘이 모자라면 무엇으로 메울 수 있을까?
그때 그곳
정조 임금이 수원에 새 성을 쌓기로 했습니다. 설계를 맡은 사람은 서른한 살의 정약용이었습니다. 아버지 상을 치르느라 고향에 내려가 있던 때였습니다.
성을 쌓는 일에서 가장 큰 문제는 돌입니다. 돌 하나가 어른 수십 명 무게인데, 산에서 떼어 내고, 수레에 싣고, 날라서, 높이 올려야 합니다.
그때까지 이 일은 사람의 어깨와 밧줄이 했습니다. 일이 커지면 사람을 더 끌어오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잡은 공사 기간이 10년이었습니다.
왜 이 질문이었나
정조는 궁궐에 있던 책 한 권을 정약용에게 내려보냈습니다. 중국에서 활동하던 선교사 테렌츠가 서양의 기계를 그림으로 소개한 『기기도설』입니다.
그 책에는 바퀴에 줄을 걸어 무거운 것을 드는 그림이 여럿 있었습니다. 도르래입니다. 도르래를 엮어 혼자서 배를 끌어 보였다는 아르키메데스의 이야기와 같은 생각입니다.
정약용은 그림을 그대로 베끼지 않았습니다. 조선의 목수가 나무와 줄로 만들 수 있는 것을 골라 다시 짰습니다.
바퀴를 위에 넷, 아래에 넷 엮으면 돌을 붙잡는 줄이 여덟 가닥이 됩니다. 여덟 가닥이 무게를 나눠 드니 손에는 8분의 1만 걸립니다. 여기에 줄을 감는 물레를 붙여 힘을 한 번 더 나눴습니다.
그는 이 계산을 「기중도설」이라는 글로 적어 임금에게 올렸습니다. 마흔 근의 힘으로 2만 5천 근을 움직일 수 있다는 계산이었습니다.
알아낸 것
화성은 2년 9개월 만에 다 쌓았습니다. 정조는 거중기를 써서 4만 냥을 아꼈다고 말했다고 전합니다.
다만 두 가지는 바로잡아 둘 만합니다.
첫째, 거중기는 성벽 위로 돌을 올린 기계가 아니었습니다. 주로 채석장에서 돌을 들어 수레에 싣는 데 썼습니다. 나르는 일은 유형거라는 수레가, 높이 올리는 일은 녹로라는 장대가 맡았습니다. 문제가 셋이라 기계도 셋이었습니다.
둘째, 공짜로 힘이 생긴 것이 아닙니다. 힘이 8분의 1로 줄면 줄은 여덟 배를 당겨야 합니다. 기계는 일을 없애 주지 않고, 같은 일을 약한 힘으로 오래 하게 바꿔 줍니다.
공사가 빨리 끝난 데에는 기계 말고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백성을 그냥 끌어다 쓰지 않고 일한 만큼 품삯을 주었습니다.
몇 해 뒤 정조가 세상을 떠나고, 정약용은 강진으로, 형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를 갑니다. 기계를 다시 만들 기회는 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공사의 모든 것을 적은 『화성성역의궤』에 거중기의 그림과 부품 그림이 남았습니다.
큰 공사는 사람을 더 많이 끌어다 어깨와 밧줄로 해내는 일이었다
「기중도설」의 계산과 『화성성역의궤』에 남은 거중기 그림, 그리고 2년 9개월 만에 끝난 공사
공사 기록이 책으로 남아 1970년대에 화성을 다시 쌓는 바탕이 되고, 같은 도르래 원리는 오늘 타워크레인에 그대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