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풀이
거중기와 수원화성 — 10년짜리 공사를 3년도 안 돼 끝낸 기계들
수원화성은 10년을 잡고 시작한 공사였는데 2년 9개월 만에 끝났습니다. 흔히 정약용의 거중기 덕분이라고 하지만, 거중기는 성벽 위로 돌을 올린 기계가 아니었습니다. 돌을 캐서 싣고, 나르고, 높이 올리는 세 가지 문제에 세 가지 기계가 있었고, 그 셋은 모두 하나의 원리로 움직였습니다. 힘은 아껴도 공짜는 없다는 원리입니다.
성 하나에 돌이 몇 개나 들어갈까
성벽은 돌을 쌓아 만듭니다. 그 돌 하나하나가 어른 수십 명 무게입니다. 산에서 떼어 내야 하고, 수레에 실어야 하고, 고개를 넘어 날라야 하고, 마지막에는 사람 키의 몇 배 높이까지 올려야 합니다.
옛날 공사에서 이 모든 것은 사람의 어깨와 밧줄이 했습니다. 그래서 성 하나를 쌓는 데 십 년쯤 걸리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정조 임금이 수원에 새 성을 쌓기로 하고 처음 잡은 기간도 10년이었습니다.
그 공사가 2년 9개월 만에 끝났습니다. 무엇이 달랐을까요. 돈과 사람을 넉넉히 들인 것, 일한 만큼 품삯을 준 것, 설계를 치밀하게 한 것이 다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하나가 새로 만든 기계들입니다.
문제가 셋이면 기계도 셋
돌 하나가 성벽에 올라가기까지 넘어야 할 고비는 셋입니다.
- 싣기 — 채석장에서 떼어 낸 돌을 수레 위로 들어 올려야 합니다. 이 일을 맡은 것이 거중기입니다.
- 나르기 — 무거운 돌을 실은 수레가 비탈에서 뒤집히지 않고 굴러가야 합니다. 이 일을 맡은 것이 유형거라는 수레입니다.
- 올리기 — 성벽 위, 높은 곳까지 돌을 들어 올려야 합니다. 이 일을 맡은 것이 녹로입니다. 긴 장대 끝에 도르래를 단 기구입니다.
도르래는 힘을 나누는 바퀴다
거중기의 비밀은 입니다. 홈 파인 바퀴에 줄을 거는 것, 학교 국기 게양대 꼭대기에 달린 그 바퀴입니다.
바퀴가 제자리에 붙어 있으면 줄을 당기는 방향만 바뀝니다. 아래로 당겨서 위로 올리니 편하긴 하지만, 힘은 그대로 다 듭니다. 이것이 고정도르래입니다.
바퀴를 돌에 매달아 돌과 함께 오르내리게 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돌을 붙잡고 있는 줄이 두 가닥이 되고, 두 가닥이 무게를 반씩 나눠 듭니다. 내 손에는 절반만 걸립니다. 이것이 움직도르래입니다.
그런데 공짜는 없다
여기서 꼭 짚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덟 가닥이 돌을 나눠 들면, 돌을 한 뼘 올리기 위해 여덟 가닥을 모두 한 뼘씩 줄여야 합니다. 그러니 손으로는 여덟 뼘을 당겨야 합니다.
힘은 8분의 1로 줄었지만 당기는 길이는 8배가 되었습니다. 힘과 거리를 곱한 값, 과학에서 이라고 부르는 양은 그대로입니다. 도르래는 일을 줄여 주지 않습니다. 같은 일을 약한 힘으로 오래 하게 바꿔 줄 뿐입니다.
말로 들으면 잘 안 와닿습니다. 아래 판에서 직접 줄을 끌어 보세요. 도르래를 바꿀 때마다 필요한 일꾼 수와, 돌이 오른 칸과 줄을 끈 칸이 함께 바뀝니다.
도구 도르래 놀이판 — 거중기는 천 근 돌을 어떻게 들었을까 채석장의 천 근짜리 돌을 금색 손잡이로 끌어 수레에 실어 봅니다. 고정도르래에서 움직도르래, 정약용의 거중기, 물레까지 바꿔 걸면 일꾼 스물다섯 명이 네 명이 되고 한 명이 됩니다. 대신 줄은 그만큼 길게 당겨야 합니다.물레를 더하면 한 사람이 든다
거중기에는 하나가 더 붙었습니다. 줄을 손으로 당기지 않고 물레에 감아 돌린 것입니다. 물레는 손잡이를 크게 돌리면 가운데 굴대가 작게 도는 바퀴입니다. 손잡이가 굴대보다 열 배 크면 힘이 다시 10분의 1로 줄어듭니다. 이것이 의 원리입니다.
바퀴 넷 달린 도르래 두 짝을 쓰면 마흔 근의 힘으로 천 근을 움직이고, 여기에 물레를 더해 손잡이를 굴대의 열 배로 하면 마흔 근의 힘으로 2만 5천 근을 움직인다.정약용, 「기중도설」 총설 (쉬운 말로 옮김)
마흔 근은 쌀 한 포대쯤 드는 힘입니다. 2만 5천 근은 코끼리 서너 마리 무게입니다. 처음에 허풍처럼 들렸던 말이 이것입니다. 도르래가 나누고 물레가 또 나누니, 계산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실제 공사장에서는 줄과 바퀴가 비벼서 생기는 때문에 그보다는 힘이 더 들었을 것입니다.
화성을 다 쌓은 뒤 정조는 거중기를 써서 큰돈을 아꼈다고 말했다고 전합니다. 기록에 남은 액수는 4만 냥입니다.
나르는 수레와 올리는 장대
유형거는 바퀴 위에 짐칸을 그냥 얹지 않았습니다. 짐칸이 처럼 기울어질 수 있게 해서, 비탈을 오르내릴 때도 짐이 수평을 지키도록 했습니다. 무거운 돌을 실은 수레가 비탈에서 뒤집히는 것이 공사장에서 가장 큰 사고였기 때문입니다.
녹로는 높이 올리는 기구입니다. 긴 장대를 비스듬히 세우고 그 끝에 도르래를 달아, 아래에서 물레로 줄을 감아 돌을 성벽 높이까지 끌어 올렸습니다. 재현한 녹로는 높이가 11미터에 이릅니다. 긴 팔 끝에 도르래를 매달아 높이 든다는 생각은 오늘의 타워크레인과 같습니다.
여기부터 조금 더
230년 뒤의 공사장
지금 아파트 공사장의 타워크레인도 같은 원리 위에 있습니다. 갈고리 위의 도르래 덩어리를 자세히 보면 줄이 두 가닥 또는 네 가닥으로 걸려 있습니다. 네 가닥으로 걸면 더 무거운 것을 들지만, 갈고리가 오르내리는 속도는 느려집니다. 거중기와 똑같은 거래입니다.
크레인에는 거중기에 없던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넘어지는 문제입니다. 긴 팔 끝에 짐을 매달면 기둥을 넘어뜨리려는 힘이 생깁니다. 무게만이 아니라 기둥에서 얼마나 멀리 매달았느냐가 함께 이 힘을 정합니다. 이것을 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크레인은 팔 반대쪽에 무거운 콘크리트 덩어리를 달고, 짐을 멀리 내밀수록 들 수 있는 무게가 줄어드는 표를 지킵니다.
아래 판에서 짐을 끌어다 갈고리에 걸고, 팔 끝까지 밀어 보세요. 어디서부터 경보가 울리는지 보입니다.
도구 타워크레인 놀이판 — 짐을 멀리 내밀면 왜 위험할까 공사장 타워크레인에 짐을 끌어다 걸고 갈고리를 팔 끝까지 밀어 봅니다. 기둥에서 멀어질수록 들 수 있는 무게가 줄어들다가 경보가 울립니다. 줄을 네 가닥 걸면 가까이서는 두 배를 들지만 멀리서는 소용이 없습니다.책이 성을 다시 세웠다
화성 공사가 끝나자 조정은 공사의 모든 것을 책으로 남겼습니다. 『화성성역의궤』입니다. 성의 설계도, 기계의 그림과 분해도, 일한 사람의 이름과 날짜와 품삯, 들어간 돌과 나무의 양까지 다 적었습니다.
이 기록이 150년 뒤에 다시 쓰였습니다. 화성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곳곳이 무너졌는데, 1970년대에 이 의궤를 펼쳐 놓고 원래 모습대로 다시 쌓았습니다. 그리고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었습니다. 무너졌다가 다시 쌓은 성이 세계유산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떻게 쌓았는지가 정확히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르래를 여럿 엮어 힘을 나눈다는 생각은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아르키메데스가 도르래를 엮어 혼자서 배를 끌어 보였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정약용은 그 생각을 책으로 만났고, 같은 시대의 홍대용처럼 바깥에서 들어온 지식을 우리 형편에 맞게 다시 짰습니다.
이 일을 하는 사람이 되려면
- 기계를 설계하는 사람 — 기계공학입니다. 도르래와 기어와 축을 계산해 힘을 나누는 장치를 짭니다.
- 건물과 구조를 계산하는 사람 — 건축공학과 토목공학입니다. 크레인이 어디에 서야 넘어지지 않는지도 이쪽에서 계산합니다.
- 크레인을 모는 사람 — 타워크레인 운전 자격을 따서 수십 미터 위 조종실에 앉습니다.
- 크레인 신호수 — 조종실에서는 매단 짐이 잘 안 보입니다. 땅에서 짐을 보며 손짓과 무전으로 조종사의 눈이 되어 주는 사람입니다.
- 돌을 다루는 사람 — 문화유산 수리 석공입니다. 무너진 성곽을 옛 방식 그대로 다시 쌓습니다.
넷째 줄과 다섯째 줄이 이 분야의 뜻밖의 자리입니다. 크레인 기사는 자기가 든 짐을 직접 보지 못하는 때가 많아서, 신호수가 없으면 아무것도 옮기지 못합니다. 그리고 화성을 다시 쌓은 것은 공학자의 계산만이 아니라 돌을 다듬을 줄 아는 손이었습니다. 공업계 고등학교나 직업훈련으로 바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남은 질문도르래는 힘을 줄이는 대신 길이를 늘렸습니다. 우리가 쉽게 한다고 느끼는 일 가운데, 사실은 다른 무엇을 더 치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