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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 대동여지도

지도를 접어서 들고 다닐 수 있을까?

지구과학· 1861· 한양 · 김정호 · 대동여지도· 재다

2분 분량갱신 2026-09-29

그때 그곳

조선에는 이미 좋은 지도가 여럿 있었습니다. 관청에는 정밀한 지도가 보관되어 있었고 지리지도 잘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문제는 쓸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큰 지도는 벽에 걸거나 바닥에 펼쳐야 볼 수 있습니다. 필사본이라 한 장을 만드는 데 오래 걸리고, 베끼는 과정에서 틀립니다.

지도가 관청의 물건이었지 길 가는 사람의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왜 이 질문이었나

김정호는 지도를 물건으로 다시 설계했습니다.

전국을 남북으로 22층으로 자르고, 각 층을 병풍처럼 접히게 만들었습니다. 한 층이 책 한 권 크기로 접힙니다. 필요한 층만 뽑아 들고 나갈 수 있습니다. 스물두 층을 다 이어 붙이면 세로 6.7미터가 됩니다.

그리고 목판에 새겼습니다. 한 번 새기면 같은 지도를 몇 장이든 똑같이 찍을 수 있습니다. 베끼면서 생기는 오차가 사라집니다.

거리는 도로 위에 십 리마다 점을 찍어 표시했습니다. 자를 대고 재는 것이 아니라 점을 세면 됩니다. 그리고 읍성과 진보, 봉수, 역참, 창고를 각각 부호로 정해 지도 위에 놓았습니다. 글자로 다 쓰지 않아도 읽히도록 만든 것입니다.

알아낸 것

1861년에 목판이 완성되었습니다. 조선에서 만들어진 가장 정밀한 전국 지도이면서, 처음으로 접어서 들고 다닐 수 있는 지도였습니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이 있습니다. 김정호가 백두산을 여러 번 오르고 전국을 직접 걸어 다녔다는 이야기, 그리고 지도를 만든 죄로 옥에 갇혀 죽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사료로 뒷받침되지 않습니다. 일제강점기 교과서에 실리면서 퍼진 것으로 봅니다. 조선이 제 나라 지도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만든 이를 죽였다는 구도가 그 교과서에 필요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앞선 지도들과 지리지를 모으고 대조하고 종합했습니다. 혼자 걸어서 나라를 잰 사람이 아니라, 흩어져 있던 자료를 하나의 쓸 수 있는 물건으로 만들어낸 사람입니다. 이쪽이 덜 극적이지만 더 어려운 일입니다.

이전 생각

지도는 관청에 보관하고 펼쳐 보는 물건이었다

증거

22첩 절첩식 목판본, 십 리마다의 거리 표시와 통일된 기호 체계

그 뒤

인쇄로 같은 지도를 여럿 찍게 되면서, 지도가 관청 밖으로 나온다

이 카드에 나온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