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 ATLAS· 과학 아틀라스

조선 측우기

비의 양을, 왜 재기 시작했을까?

지구과학· 1441· 한양 · 조선 측우기· 잇다

1분 분량갱신 2026-09-29

그때 그곳

조선 세종대. 농사가 나라의 근본이었고, 세금은 그해 수확에 따라 매겼습니다. 그리고 수확을 좌우하는 것은 비였죠. 어느 고을에 비가 얼마나 왔는지 알아야 세금을 조정하고 구휼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왜 이 질문이었나

원래 방식은 비가 그친 뒤 땅을 파서 젖어 들어간 깊이를 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문제가 있습니다. 모래땅과 진흙땅은 물이 스며드는 정도가 다릅니다.

같은 비가 왔어도 고을마다 다른 숫자가 나오는 겁니다. 그러면 어느 고을이 더 가물었는지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비교할 수 없는 숫자는 아무 쓸모가 없죠.

알아낸 것

답은 흙을 빼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똑같은 크기의 쇠 그릇을 전국에 나눠주고, 거기 고인 물의 깊이를 자로 재게 했습니다. 그릇이 같으면 어디서 잰 값이든 나란히 놓고 견줄 수 있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그릇 하나가 아니라 그 뒤에 만든 체계입니다. 규격을 정하고, 언제 어떻게 재는지를 정하고, 잰 값을 중앙으로 올리게 했습니다. 서울의 서운관에서 각 도의 감영, 그리고 고을까지 이어지는 관측망이 만들어진 겁니다.

하나를 관측한 것이 아니라, 나라 전체를 동시에 관측한 것이죠.

이전 생각

비의 양은 땅이 젖은 깊이로 어림한다

증거

규격이 통일된 측우기와, 전국에서 올라와 실록에 남은 보고 기록

그 뒤

유럽에서 규격을 통일한 우량 관측망이 만들어지는 것은 17세기 이후의 일입니다

이 카드에 나온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