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 · 자격루
사람이 지켜보지 않아도 시간을 알릴 수 있을까?
그때 그곳
물시계는 아주 오래된 장치입니다. 물이 일정한 속도로 흐르게 해두고, 그 물이 찬 높이로 시각을 읽습니다.
문제는 읽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군가 밤새 눈금을 지켜보다가 정해진 시각이 되면 종을 쳐야 했습니다. 그 종소리로 도성의 문을 여닫고 통행금지를 걸었으니, 늦거나 이르면 나라의 하루가 어긋납니다.
실수하면 벌을 받았습니다. 졸음과 처벌 사이에 사람을 세워두는 방식이었습니다.
왜 이 질문이었나
장영실이 만든 것은 더 정확한 물시계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을 빼버린 물시계였습니다.
물이 차오르면 항아리 안의 살대가 떠오릅니다. 그 살대가 위로 올라가면서 걸쇠를 건드리면 작은 쇠구슬이 굴러 떨어집니다. 구슬은 정해진 홈을 따라 굴러가 다음 걸쇠를 건드리고, 그것이 더 큰 구슬을 풀어놓습니다.
마지막에 그 힘이 지렛대를 밀어 올리면 나무 인형이 팔을 움직여 종을 치고, 북을 치고, 징을 칩니다. 열두 시진마다 다른 인형이 나와 시각을 알립니다.
물의 높이라는 연속적인 변화를, 구슬이 떨어지는 순간이라는 딱 떨어지는 사건으로 바꾼 것이 핵심입니다.
알아낸 것
1434년부터 자격루가 조선의 표준 시계가 되었습니다. 경복궁 보루각에 두고, 여기서 나온 시각을 종루로 보내 도성 전체에 알렸습니다.
시계 하나를 만든 것이 아니라 나라의 시각 기준을 하나로 세운 것입니다. 측우기가 전국의 비를 견줄 수 있게 만든 것과 같은 종류의 일입니다. 세종대의 사업들은 대체로 이런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장치보다 그 장치를 중심으로 짜인 체계가 본체입니다.
장영실은 관노 출신이었습니다. 재주가 알려져 발탁되었고 종3품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나 1442년 그가 감독한 어가가 부서지는 일이 있었고, 그 뒤 기록에서 그의 이름이 사라집니다.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시각은 사람이 눈금을 지켜보다 알려야 하는 것이었다
물의 높이를 구슬이 떨어지는 사건으로 바꾸어 종과 북을 자동으로 울린 장치
자격루가 도성 시각의 기준이 되고, 세종대 표준화 사업의 한 축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