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선택 — 목적도 방향도 없는 과정이 방향을 만든다
다윈은 독자를 설득할 때 자연에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비둘기를 골라 만든 결과를 먼저 보여주고 나서 「하물며」라고 했습니다 — 사람이 눈대중으로 몇백 년 골라 이만큼 했다면, 하물며 자연이 삶과 죽음을 걸고 수백만 년 골라낸다면. 여기서는 그 골라내기를 직접 돌려 봅니다.
첫 번째 손잡이 — 둘 다 있어야 한다
개체 260마리가 있고, 각자 형질값이 조금씩 다릅니다(가로축). 세대를 넘길 때마다 형질이 큰 쪽이 자손을 조금 더 남깁니다. 손잡이는 둘 — 얼마나 다양한가와 얼마나 세게 골라내는가입니다. 어느 쪽이든 0 으로 놓아 보십시오.
이것이 「진화는 우연이다」라는 가장 흔한 오해가 깨지는 자리입니다. 변이가 생기는 것은 우연이 맞습니다. 그러나 골라내는 일은 우연이 아닙니다. 선택을 0 으로 두면 평균은 이리저리 흔들릴 뿐 어디로도 가지 않습니다. 우연과 선택이 곱해질 때만 방향이 생깁니다.
그리고 반대쪽도 보십시오. 아무리 세게 골라내도 모두가 똑같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고를 것이 없으면 고를 수 없습니다. 다윈이 비둘기 육종가에게서 본 것이 이것입니다 — 육종가가 하는 일도 결국 이미 있던 차이 중에서 고르는 일이었습니다.
두 번째 손잡이 — 같은 조건, 다른 규칙
같은 출발점에서 두 모형을 나란히 돌립니다. 왼쪽은 살아 있는 동안 늘린 것이 자식에게 전해진다는 생각(획득형질 유전), 오른쪽은 늘린 것은 전해지지 않고 원래 길게 태어난 쪽이 더 남긴다는 생각(자연선택)입니다. 평균만 보면 둘 다 오른쪽으로 갑니다. 다른 것은 모양입니다.
왼쪽은 개체군이 통째로 함께 움직입니다. 모두가 조금씩 길어지니까요. 오른쪽은 퍼진 폭이 좁아지면서 옮겨갑니다. 짧은 쪽이 덜 남기고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같은 결과를 두 가지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 때, 무엇을 보면 갈릴지 — 이 모양의 차이가 그 답이었습니다.
라마르크가 틀린 이유는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그는 종이 변한다는 것 자체는 맞혔습니다. 다윈보다 반세기 앞서서요. 틀린 것은 어떻게 변하는가였습니다. 그리고 그 「어떻게」는 다윈도 절반만 알았습니다 — 변이가 왜 생기는지, 형질이 어떤 방식으로 전해지는지는 그도 몰랐으니까요.
방향이 있다는 것과 목적이 있다는 것은 다릅니다. 개체군은 한쪽으로 옮겨가지만, 그것을 향해 간 것은 아닙니다. 환경이 바뀌면 반대쪽으로 갑니다. 진화에는 방향은 생겨도 목표는 없습니다.
어떤 개체도 스스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세대가 쌓이자 개체군 전체가 옮겨갔습니다. 설계자도 목적도 없이 정교한 것이 만들어졌다면 — 정교함은 무엇의 증거일까요?
여기서 만진 것들에 붙은 이름입니다. 다윈이 몰랐던 절반 — 변이가 왜 생기고 형질이 어떻게 전해지는가 — 은 그가 죽고 한참 뒤에야 채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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