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이상했다
찰스 다윈
세계를 일주하고 돌아와, 이십 년 동안 집에서 비둘기를 쳤다
이론은 서랍 안에 이십 년 있었습니다. 그동안 그가 매달린 것은 증거를 더 모으는 일이 아니라, 남을 설득할 순서를 짓는 일이었습니다.
비글호에서 돌아온 것이 1836년입니다. 이태 뒤 맬서스를 읽다가 논증의 마지막 고리를 찾았고, 1842년에는 서른다섯 쪽짜리 연필 스케치를, 1844년에는 이백삼십 쪽짜리 원고를 완성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마흔이 되기 전에 이미 답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1859년까지, 이십 년을요.
흔히 종교적 반발이 두려워서였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가 그 이십 년에 실제로 한 일들을 늘어놓으면 다른 것이 보입니다. 따개비를 팔 년 동안 분류했고, 런던의 비둘기 애호가 모임에 나갔고, 집에서 비둘기를 직접 쳤습니다.
세계를 일주하고 돌아온 사람이 왜 뒷마당에서 비둘기를 쳤을까요.
하물며
『종의 기원』 첫 장을 펴면 갈라파고스가 나오지 않습니다. 자연도 나오지 않습니다. 첫 장의 제목은 「사육 하의 변이」이고, 거기 나오는 것은 비둘기입니다.
그는 독자에게 먼저 이것을 보여줍니다. 공작비둘기와 파우터와 전서구는 생김새가 저렇게 다른데, 전부 야생 바위비둘기 하나에서 나왔습니다. 그것도 사람이 겨우 몇백 년 동안, 눈으로 대충 골라서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당시 영국에서 비둘기 육종은 누구나 아는 취미였습니다. 즉 이것은 증명해야 할 주장이 아니라, 독자가 이미 아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한 걸음이 책 전체의 구조입니다. 아는 것에서 모르는 것으로,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그가 이십 년 동안 만든 것은 이론이 아니라 이 사다리였습니다. 이론은 1838년에 이미 있었으니까요.
따개비 팔 년도 같은 일의 일부였습니다. 종과 변종을 실제로 가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 어디까지가 같은 종이고 어디부터 다른 종인지 손으로 겪어 보지 않고 「종은 갈라진다」고 쓸 수는 없었던 겁니다. 그는 남이 물을 만한 반문을 미리 다 겪어 두려고 했습니다.
끝을 낸 것은 그 자신이 아니었습니다. 1858년 여름, 말레이 제도에 있던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가 편지를 보내옵니다. 자기 생각을 정리했으니 봐 달라는 것이었는데, 열어 보니 같은 결론이었습니다. 그해 칠월 린네 학회에서 두 사람의 글이 함께 읽혔고, 그는 급히 쓰기 시작해 이듬해 십일월에 책을 냈습니다. 초판 천이백오십 부는 서점 주문만으로 첫날에 동났습니다.
이십 년을 미룬 사람이 마지막 열여섯 달 만에 책을 완성한 셈입니다. 그리고 그 책은 그가 애초에 쓰려던 대작이 아니라, 그것을 줄인 「요약본」이었습니다. 그는 평생 그 점을 아쉬워했습니다.
남은 질문그가 이십 년 동안 찾은 것이 증거가 아니라 순서였다면 — 옳은 것을 말하는 일과, 옳다고 믿게 하는 일은 얼마나 다른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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