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 ATLAS· 과학 아틀라스

개념 풀이

양자컴퓨터가 나오면 모든 문제가 풀린다 — 어디까지가 진짜인가

암호가 다 뚫리고, 신약이 쏟아지고, 슈퍼컴퓨터가 못 푸는 난제가 풀린다고들 합니다. 양자컴퓨터 강의를 다섯 번 들어도 이해가 안 됐다면, 설명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이 전제가 틀려 있어서입니다. 양자컴퓨터는 아무 문제나 빨리 푸는 기계가 아닙니다. 틀린 답을 서로 지우게 만들 수 있는 문제만 빨리 풉니다. 그 한 줄을 먼저 놓고 다시 읽으면 나머지가 맞아 들어갑니다.

이 글이 꿰는 질문들 27분 분량갱신 2026-09-13

모든 길을 동시에 간다는 말

양자컴퓨터를 설명할 때 제일 많이 나오는 비유가 있습니다. 보통 컴퓨터는 길을 하나씩 가 보는데, 양자컴퓨터는 모든 길을 동시에 간다는 것입니다. 미로 비유, 내비게이션 비유가 다 이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당연한 의문이 생깁니다. 그건 그래픽카드도 하는 일 아닌가. 그래픽카드는 점을 하나씩 찍는 대신 수천 개 노즐로 한꺼번에 뿌립니다. 일꾼 수천 명이 동시에 일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양자컴퓨터도 그냥 일꾼이 많은 컴퓨터인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 비유가 그 차이를 빠뜨리기 때문에, 이 비유로 시작한 설명은 끝까지 아귀가 안 맞습니다. 차이는 세 문장입니다. 담는 것은 두 배씩 불어나고, 읽는 것은 하나만 되고, 그래서 틀린 것을 지워 놓고 읽는다.

담는 것은 두 배씩 불어난다

동전 열 개를 앞뒤로 늘어놓는 경우의 수는 1024가지입니다. 보통 컴퓨터가 이 1024가지를 다 살펴보려면 1024번 계산해야 합니다. 그래픽카드는 노즐 1024개로 한 번에 합니다. 어느 쪽이든 1024라는 수만큼의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큐비트는 다릅니다. 큐비트는 아직 앞인지 뒤인지 정해지지 않은 동전입니다.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두 가지를 다 담고 있습니다. 그런 동전 열 개를 놓으면, 열 개가 정해지지 않은 채로 1024가지 가능성을 한꺼번에 담습니다. 하나 더 놓으면 2048가지. 두 배씩 불어납니다.

읽는 것은 하나만 된다

그런데 여기서 함정이 있습니다. 1024가지를 담고 있는 건 맞는데, 그 1024가지를 다 읽을 수는 없습니다. 뚜껑을 여는 순간 동전 열 개가 각각 앞이나 뒤로 정해지고, 그중 한 가지만 눈에 보입니다. 어느 것이 나올지는 확률입니다.

그러니 담아 두기만 하고 열면 복권입니다. 1024분의 1로 정답이 나옵니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모든 길을 동시에 가기는 갔는데, 도착한 것을 못 읽습니다. 그 비유가 무너지는 자리가 여기입니다.

그래서 틀린 것을 지워 놓고 읽는다

양자컴퓨터의 진짜 재주는 담는 것이 아니라 지우는 것입니다. 이걸 이해하려면 소음 지우는 헤드폰 하나면 됩니다.

그 헤드폰은 바깥 소음을 마이크로 듣고, 그 소음과 딱 반대인 소리를 만들어 귀에 넣습니다. 두 소리가 만나서 서로 지워집니다. 소리는 파도라서 지울 수 있습니다. 파도는 마루와 골이 만나면 사라집니다.

큐비트에 담긴 1024가지 가능성도 저마다 파도입니다. 그래서 파도끼리 서로 지울 수 있습니다(). 양자컴퓨터의 계산이란, 틀린 답 1023개의 파도가 서로 반대로 만나 지워지고 정답의 파도만 겹쳐 커지도록 순서를 짜는 일입니다. 틀린 답들이 스스로 노이즈캔슬링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놓고 뚜껑을 엽니다. 동전 열 개가 앞뒤로 정해지고, 그 열 자리가 정답일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확실하지는 않아서 몇 번 돌려 확인합니다.

그러니 지울 수 있는 문제만 풀린다

여기가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입니다. 양자컴퓨터는 아무 계산이나 빨라지지 않습니다. 틀린 답들이 서로 지워지게 순서를 짤 수 있는 문제여야 합니다. 그런 순서가 알려진 문제는 몇 개 없습니다. 큰 수를 로 쪼개는 것, 분자의 움직임을 흉내 내는 것, 뒤죽박죽인 목록에서 하나를 찾는 것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 첫째가 지금 인터넷 의 바탕입니다.

이 문장 하나가 빠져 있어서, 양자컴퓨터 이야기가 그렇게 어려웠던 것입니다. 만능 계산기라는 그림을 머리에 둔 채 큐비트 설명을 들으면 아귀가 맞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부터 조금 더

그러면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과장인가

처음의 그 말들로 돌아가서 하나씩 선을 긋겠습니다.

암호가 다 뚫린다진짜

지금 인터넷 암호는 큰 수를 두 소수로 쪼개기가 어렵다는 데 기대고 있습니다. 그런데 큰 수 쪼개기가 바로 틀린 답이 서로 지워지게 짤 수 있는 문제입니다. 1994년 쇼어가 그 순서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암호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말은 사실이고, 실제로 지금 바꾸는 중입니다.

신약이 쏟아진다절반

분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그 자체가 양자 문제라 양자컴퓨터가 흉내 내기에 맞습니다. 그런데 신약이 늦는 이유의 대부분은 계산이 아니라 사람 몸에서 시험하는 데 걸리는 시간입니다. 계산이 빨라져도 그 시간은 안 줄어듭니다.

생명의 기원 같은 난제가 풀린다아니다

그건 계산이 모자라서 못 푸는 문제가 아닙니다. 무엇을 계산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문제입니다.

슈퍼컴퓨터가 못 푸는 문제를 푼다조건부

못 푸는 문제 가운데 몇 가지를, 입니다. 엑셀이 빨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집에 있는 컴퓨터가 양자컴퓨터로 바뀔 일도 없습니다.

내비게이션 비유가 특히 나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길 찾기는 지울 수 있는 문제 목록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양자컴퓨터가 잘하는 일의 예로 양자컴퓨터가 못 하는 일을 든 셈입니다.

파도로 계산한다는 생각은 어디서 왔나

큐비트가 파도라는 것은 비유가 아닙니다. 1924년 드 브로이가 모든 알갱이는 파도이기도 하다고 했고, 슈뢰딩거가 그 파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식으로 적었습니다. 양자컴퓨터는 그 식이 백 년 뒤에 기계가 된 것입니다.

기계로 만들자는 말을 처음 한 사람은 파인만입니다. 1982년에, 자연은 양자로 움직이니 자연을 흉내 내려면 컴퓨터도 양자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아무도 만들 줄 몰랐습니다. 순서를 짜는 법이 나온 것이 1994년이고, 큐비트 몇 개가 실제로 돌아간 것이 2000년대입니다.

왜 얼리는가

양자컴퓨터 사진을 보면 샹들리에처럼 생긴 금색 장치가 나옵니다. 그건 컴퓨터가 아니라 냉장고입니다. 맨 아래 손톱만 한 칩이 컴퓨터이고, 나머지는 그 칩을 근처까지 식히는 장치입니다.

왜 얼리느냐면, 파도가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지워지는 것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바깥에서 열이나 진동이 들어오면 파도가 흐트러집니다. 계산을 위해서가 아니라 파도를 지키려고 얼리는 것입니다. 바깥 세상과 끊어 두는 것입니다.

영하 269도 근처를 만드는 기술은 핵융합 장치의 초전도 자석과 같은 기술입니다. 케이스타의 자석도, 양자컴퓨터의 칩도, 병원의 MRI도 같은 온도에서 삽니다. 초전도라는 온도 하나가 서로 다른 세 기술을 받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이 시리즈에서 따로 합니다.

이 일을 하는 사람이 되려면

우리나라에서는 대전의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초전도 방식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의 길은 이렇게 갈립니다.

  1. 틀린 답이 지워지게 순서를 짜는 사람 — 수학과 컴퓨터과학 쪽입니다. 새 순서 하나가 나오면 그게 곧 논문이고 뉴스입니다.
  2. 큐비트가 흐트러진 것을 잡아 고치는 사람 — 오류 정정이라고 부르는 분야입니다. 지금 이 기술의 가장 큰 벽이 여기입니다.
  3. 칩을 만드는 사람 — 반도체 공정과 극저온 재료 쪽입니다.
  4. 레이저와 진공을 다루는 사람 — 광학 기술 쪽입니다. 원자를 띄우는 방식에서는 이 사람이 곧 컴퓨터를 켜는 사람입니다.
  5. 냉장고를 돌보는 사람 — 극저온 설비 쪽입니다. 핵융합 편에서 본 그 냉장고와 같은 일입니다.
  6. 암호를 바꾸는 사람 — 보안 실무 쪽입니다. 양자컴퓨터가 아직 없는데도 이미 일이 있는 유일한 자리입니다.

여섯째 줄이 이 편의 뜻밖의 자리입니다. 암호를 뚫을 만한 양자컴퓨터는 아직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오가는 암호문을 저장해 두었다가 나중에 뚫을 수 있으니, 암호는 지금 바꿔야 합니다. 그래서 은행과 정부와 통신사에서 이미 사람을 뽑고 있습니다. 기계가 없는데 일자리가 먼저 생긴 드문 경우입니다.

그래서 언제 쓰나

암호를 뚫을 만한 크기는 아직 멉니다. 지금 있는 것은 큐비트 수백 개 수준이고, 그것도 자꾸 흐트러져서 쓸 만한 큐비트로 치면 훨씬 적습니다. 암호를 뚫으려면 흐트러지지 않는 큐비트가 수천 개는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니 지금 양자컴퓨터가 하는 일은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흐트러지지 않게 버티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만드는 중입니다. 완성되는 날 이 글은 이 시리즈에서 빠져 역사로 옮겨 갑니다.

남은 질문틀린 답을 지울 수 있는 문제만 풀린다면, 세상에서 가장 풀고 싶은 문제 가운데 그렇게 짤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