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풀이
슈퍼컴퓨터 — 실험할 수 없는 것을 실험하는 법
은하 두 개가 부딪히면 어떻게 될까요. 해볼 수가 없습니다. 십억 년이 걸리고 부딪힐 은하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세 번째 방법을 만들었습니다. 대전의 과학기술정보연구원이 나라의 슈퍼컴퓨터를 돌리는 곳입니다.
세 번째 방법
오랫동안 과학에는 두 가지 길이 있었습니다. 머리로 따져 보는 것과 직접 해보는 것입니다. 이론과 실험입니다.
거기에 세 번째가 생겼습니다. 계산해 보는 것입니다. 규칙을 넣고 아주 짧은 시간만큼 움직인 결과를 구한 다음, 그것을 다시 시작점으로 삼아 또 조금 움직입니다. 이것을 수없이 되풀이하면 십억 년이 지나갑니다. 이것이 입니다.
틀린 규칙을 넣으면 틀린 답이 나온다
여기에 함정이 하나 있습니다. 계산이 아무리 정확해도, 처음에 넣은 규칙이 틀렸으면 결과도 틀립니다.
화면에 그럴듯한 그림이 나오면 사실처럼 보이는데, 그것은 넣은 규칙이 그린 그림일 뿐입니다. 그래서 시뮬레이션 연구는 결과를 실제 관측과 계속 맞대어 봅니다. 이미 아는 일부터 계산해서 답이 맞는지 확인한 다음에야 모르는 것으로 넘어갑니다.
여기부터 조금 더
슈퍼컴퓨터는 아주 빠른 컴퓨터가 아니다
이름 때문에 오해하기 쉽습니다. 한 대가 어마어마하게 빠른 것이 아닙니다.
안을 열어 보면 보통 컴퓨터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한 계산 장치가 수만 개 줄지어 있습니다. 슈퍼컴퓨터는 그것들을 아주 빠른 선으로 묶어 한 문제를 나눠 맡게 한 것입니다. 혼자 빠른 것이 아니라 여럿이 동시에 하는 것입니다.
절반은 열을 다루는 일이다
계산 장치 수만 개가 동시에 돌면 엄청난 열이 납니다. 그대로 두면 스스로 익어 버립니다.
그래서 슈퍼컴퓨터가 있는 방은 절반이 냉각 설비입니다. 물을 돌려 열을 빼내고, 그 물을 다시 식히고, 정전이 나도 안 꺼지게 전기를 받쳐 둡니다. 쓰는 전기가 작은 마을 하나 분량입니다.
이 대목은 편과 이어집니다. 계산도 결국 전기를 열로 바꾸는 일이고, 그 열은 어딘가로 빼내야 합니다.
요즘 곳곳에 짓는 그 건물
요즘 뉴스에 데이터센터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사실 슈퍼컴퓨터와 같은 물건입니다. 계산 장치를 잔뜩 모아 놓고 식히는 건물이라는 점에서요.
다른 것은 목적입니다. 슈퍼컴퓨터는 큰 문제 하나를 수만 조각으로 나눠 풉니다. 데이터센터는 수많은 사람의 요청을 하나씩 따로 처리합니다. 앞의 것은 한 팀이 큰 짐을 나눠 드는 모습이고, 뒤의 것은 창구가 수만 개인 은행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앞에서 본 문제가 그대로 따라옵니다. 전기와 열입니다. 큰 데이터센터 하나가 쓰는 전기는 작은 도시 하나 분량이고, 그 전기는 거의 전부 열로 바뀌어 나옵니다. 그 열을 빼내려고 물을 돌리는데, 그 물도 적지 않게 듭니다.
그래서 데이터센터를 어디에 지을지가 문제가 됩니다. 전기가 싸고 서늘한 곳이 좋습니다. 북쪽 나라에 짓거나, 발전소 옆에 붙이거나, 찬 바닷물을 끌어다 쓰거나, 아예 바닷속에 담가 보는 시도까지 나왔습니다.
그런데 반대 조건도 있습니다. 사람에게서 너무 멀면 신호가 오가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사람 가까이 두고 싶은 마음과 시원한 데 두고 싶은 마음이 늘 부딪힙니다. 우리나라에서 데이터센터가 수도권에 몰려 있어 문제가 되는 것도 이 줄다리기입니다.
우리가 검색을 한 번 하거나 인공지능에게 무언가를 물을 때마다 어딘가의 건물에서 전기가 쓰이고 그만큼 열이 납니다. 화면에서는 아무 무게가 없어 보이는 일이 어딘가에서는 물리적인 일입니다.
그 열로 발전을 하면 안 될까
여기서 누구나 한 번쯤 떠올리는 생각이 있습니다. 발전소는 물을 끓여 증기로 터빈을 돌립니다. 데이터센터에서는 열이 그렇게 많이 나온다는데, 그 열로 물을 끓여 터빈을 돌리면 전기를 도로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좋은 질문입니다. 그리고 답은 거의 안 된다인데, 안 되는 이유가 이 시리즈에서 계속 나온 이야기와 맞물립니다.
발전소의 증기는 수백 도입니다. 그래서 바깥 공기와의 차이가 큽니다. 그런데 데이터센터에서 나오는 열은 공기로 식히면 30도에서 40도쯤, 물로 식혀도 60도 안팎입니다. 미지근합니다.
미지근한 물은 애초에 끓지도 않습니다. 낮은 온도에서 끓는 다른 액체를 써서 억지로 돌리는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다만 그렇게 해도 꺼낼 수 있는 몫은 몇 퍼센트에 그치고, 그 장치를 놓고 돌리는 데 드는 비용과 자리를 생각하면 남는 장사가 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열은 열로 쓴다
그러면 그냥 버리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전기로 되돌리려는 생각을 접고 열을 열로 쓰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미지근한 물은 발전에는 쓸모가 없지만 난방에는 딱 맞습니다. 겨울에 방을 데우는 데 수백 도가 필요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북유럽에서는 데이터센터의 열을 동네 난방으로 보냅니다. 온실을 데워 작물을 기르거나 수영장 물을 데우는 데 쓰기도 합니다.
태양전지와 수소 편에서 에너지는 만들어지지 않고 모양만 바뀐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한 줄 더 붙일 수 있습니다. 모양이 바뀔 때마다 질이 떨어지고, 떨어진 질은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에너지를 쓴다고 말할 때 실제로 없어지는 것은 양이 아니라 이 질입니다.
그럼 우주에 지으면 시원하지 않을까
이것도 누구나 떠올리는 생각입니다. 우주는 영하 270도쯤 된다고 하니, 거기다 데이터센터를 올리면 냉각 걱정이 없지 않을까요.
직관이 정확히 거꾸로 뒤집히는 자리입니다. 우주에서는 열을 빼내기가 지구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주선과 우주정거장에서는 더위가 늘 큰 문제입니다. 우주정거장에 날개처럼 펼쳐진 판들 가운데 상당수가 태양전지가 아니라 열을 버리는 방열판입니다. 여기에 햇빛이 가리는 것 없이 그대로 내리쬐는 문제, 고장 나도 사람이 못 가는 문제, 신호가 오가는 데 걸리는 시간까지 붙습니다.
그래도 우주에 데이터센터를 짓겠다는 계획들이 실제로 나옵니다. 다만 이유가 시원해서가 아닙니다. 대기에 가리지 않은 햇빛을 밤낮없이 받을 수 있어서, 즉 전기 때문입니다. 냉각이 이유라면 잘못 짚은 것이고, 전력이 이유라면 따져 볼 만한 이야기입니다.
그럼 폐광산은 어떨까
이쪽은 반대로 꽤 그럴듯합니다. 우리나라에는 문 닫은 광산이 많고, 실제로 유럽과 미국에는 옛 광산이나 벙커에 들어앉은 데이터센터가 있습니다.
땅속의 좋은 점은 온도가 일정하다는 것입니다. 지표는 여름과 겨울이 사십 도 넘게 벌어지지만,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일 년 내내 십몇 도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습니다. 여름에 동굴이 시원하고 겨울에 덜 추운 것이 이 때문입니다. 냉방에 드는 힘이 그만큼 줄어듭니다.
갱도에 고인 물을 냉각수로 쓸 수 있다는 점, 두꺼운 암반이 태풍과 화재와 침입을 막아 준다는 점도 유리합니다. 폐광 지역에 일자리가 생긴다는 것도 작지 않은 이유입니다.
다만 만만하지는 않습니다.
- 습기가 문제입니다. 땅속은 대체로 눅눅해서 기계에 물이 맺힙니다.
- 공기를 계속 넣고 빼 주어야 합니다. 사람도 기계도 숨을 쉽니다.
- 무너지지 않게 지반을 살펴야 합니다. 폐광은 원래 버려진 구멍입니다.
- 굵은 전기를 산속까지 끌고 들어가야 합니다. 이게 대개 가장 큰 돈입니다.
- 사람 많은 곳에서 멀면 신호가 오가는 시간이 늘어납니다.
그래서 정답은 조건에 따라 다릅니다. 실시간으로 빨라야 하는 일에는 안 맞고, 자료를 오래 보관하거나 밤새 계산만 돌리는 일에는 잘 맞습니다. 무조건 최적지라기보다 어떤 일을 맡길 것인가에 달린 문제입니다.
참고로 온도를 아주 낮은 쪽으로 계속 내리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가 궁금해집니다. 그 바닥이 입니다. 다만 거기서도 모든 것이 멈추지는 않습니다. 더 낮아질 수 없는 가장 낮은 상태에 있을 뿐, 그 상태에도 남아 있는 떨림이 있습니다.
무엇에 쓰나
- 내일과 다음 계절의 날씨, 그리고 백 년 뒤의 기후를 계산합니다.
- 약이 될 만한 분자 수만 개를 컴퓨터 안에서 먼저 걸러 냅니다. 실제 실험은 그다음입니다.
- 자동차가 부딪히는 순간을 부수지 않고 살펴봅니다.
- 은하와 별이 만들어지는 십억 년을 며칠로 줄여 돌려 봅니다.
- 인공지능을 학습시킵니다. 요즘 이 몫이 가장 빠르게 커지고 있습니다.
이 연구원은 계산만 하는 곳이 아닙니다. 연구자들이 쓰는 초고속 연구망을 운영하고, 논문과 연구 자료를 모아 두는 일도 합니다. 계산 결과와 관측 자료를 누가 어떻게 보관할 것인가는 요즘 과학에서 점점 커지는 문제입니다.
이 일을 하는 사람이 되려면
전산학과만 있는 곳이 아닙니다.
- 무엇을 계산할지 아는 사람 — 물리, 화학, 기상, 생명 같은 각자의 분야입니다.
- 그것을 컴퓨터가 풀 수 있는 모양으로 바꾸는 사람 — 수치해석과 응용수학 쪽입니다.
- 수만 개로 나눠 돌게 만드는 사람 — 전산과 병렬처리 쪽입니다.
- 그 기계를 식히고 전기를 대는 사람 — 기계와 전기 설비 쪽입니다.
- 밤새 돌아가는 기계를 지키고 고치는 사람 — 시설 운영 쪽입니다.
첫 줄이 중요합니다. 슈퍼컴퓨터를 쓰는 사람 대부분은 전산 전공이 아닙니다. 기상학자이거나 화학자입니다. 자기 분야를 알면서 계산도 할 줄 아는 사람이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래서 계산과학은 어느 한 학과에 속하지 않고 모든 학과에 조금씩 걸쳐 있습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줄도 진짜 직업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기계라도 물이 새면 멈춥니다.
이 일을 하는 곳이 대전 유성구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입니다.
남은 질문해볼 수 없는 것을 계산으로 대신한다면 — 그 계산이 맞는지는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