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풀이
핵융합 — 태양을 땅 위에 만들 수 있을까
대전 유성구에 도넛처럼 생긴 커다란 장치가 있습니다. 안에서 1억 도짜리 기체가 자석에 떠 있습니다. 태양이 하는 일을 땅 위에서 흉내 내는 중입니다. 왜 그렇게 뜨거워야 하는지, 왜 아직 발전소가 없는지, 그리고 이 일을 하는 사람은 무엇을 공부한 사람인지 봅니다.
불이 아니다
우리가 아는 불은 무언가가 공기 속 산소와 붙는 일입니다. 촛불도 장작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태양에는 산소가 거의 없습니다. 붙을 상대가 없으니 우리가 아는 방식으로는 탈 수가 없습니다.
태양에서 벌어지는 일은 훨씬 안쪽에서 일어납니다. 원자 한가운데에 있는 아주 작은 알맹이, 끼리 서로 부딪혀 하나로 합쳐집니다. 합쳐지는 순간 열이 나옵니다. 이것이 입니다. 붙는다는 뜻의 융합이지요.
우리가 붙이려는 것은 얼마나 작은가
작다는 말은 쉬운데 얼마나 작은지는 잘 안 잡힙니다. 원자 하나를 축구장만 하게 키워 봅시다. 그러면 한가운데 놓인 원자핵은 쌀 한 톨쯤 됩니다. 나머지는 전부 빈 공간입니다.
우리가 붙이려는 것은 축구장이 아니라 그 쌀 한 톨입니다. 축구장 두 개를 나란히 놓고 한가운데 쌀알끼리 정확히 맞부딪히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이 일이 왜 까다로운지 조금 짐작이 갑니다.
원자가 무엇이고 원자핵이 무엇인지부터 손에 안 잡히면 아래 판을 먼저 열어 보세요. 축구장에서 쌀 한 톨까지 직접 들어가 볼 수 있습니다. 양성자와 중성자와 전자를 하나씩 더하고 빼면 수소가 어떻게 중수소가 되는지도 그 자리에서 보입니다. 이 글에 나오는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거기서 만들어집니다.
도구 원자에서 주기율표까지 — 쌀 한 톨에서 118개의 표로 원자를 축구장만 하게 키워 쌀 한 톨짜리 원자핵까지 들어가 보고, 양성자·중성자·전자를 하나씩 바꿔 수소가 중수소가 되고 헬륨이 되는 것을 보고, 원소마다 손이 몇 개인지로 물과 소금이 왜 그렇게 생겼는지 봅니다. 그다음 한 줄을 접어 표를 만들고 노래로 118개를 훑습니다.쪼개도 나오고 붙여도 나온다
이상한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원자력발전소는 원자핵을 쪼개서 에너지를 얻습니다. 그런데 태양은 붙여서 에너지를 얻습니다. 쪼개도 나오고 붙여도 나오면, 도대체 어느 쪽이 맞는 걸까요.
그림으로 떠올리면 이렇습니다. 철이 골짜기 맨 바닥이고, 그 양쪽이 다 비탈입니다. 무거운 우라늄은 한쪽 비탈 위에 있어서 쪼개지면서 굴러 내려오고, 가벼운 수소는 반대쪽 비탈 위에 있어서 붙으면서 굴러 내려옵니다. 어느 쪽에서 굴러오든 도착하는 곳은 철입니다. 굴러 내려온 만큼이 에너지입니다.
태양은 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소를 붙입니다. 우주에서 가장 흔한 재료로, 가장 큰 에너지를 냅니다. 그러니 이걸 지구에서 할 수만 있다면 연료 걱정은 사실상 없어집니다.
그런데 왜 아직 발전소가 없나
원자핵은 모두 플러스 전기를 띠고 있습니다. 자석의 같은 극끼리 밀어내는 것처럼, 원자핵끼리도 서로 밀어냅니다. 가까이 갈수록 더 세게 밉니다. 그 미는 힘을 이기고 부딪히게 하려면 아주 빠르게 던져야 하고, 알갱이를 빠르게 만드는 방법이 곧 뜨겁게 데우는 것입니다.
필요한 온도가 1억 도쯤 됩니다. 여기서 진짜 문제가 나옵니다. 그렇게 뜨거운 것을 담을 그릇이 세상에 없다는 것입니다. 철도 텅스텐도 그 근처에서 다 녹아 버립니다.
자석으로 그릇을 만든다
답은 벽에 닿지 않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기체를 라는 상태로 바꿔야 합니다. 만질 수 없던 것을 자석이 만질 수 있는 것으로 바꾸는 일이고, 세 걸음입니다.
- 기체에 전기를 세게 겁니다. 그러면 원자에 붙어 있던 전자가 떨어져 나갑니다.
- 전자가 떨어져 나가면 남은 알맹이와 전자가 따로 흩어집니다. 흩어진 것들이 저마다 전기를 띠고 있습니다. 이 상태가 플라스마입니다.
- 전기를 띠면 자석이 손을 댈 수 있습니다. 기체일 때는 자석을 아무리 가까이 대도 꿈쩍도 하지 않던 것이 이제 자석 말을 듣습니다.
그래서 도넛 모양으로 을 둘러쳐 그 안에 플라스마를 가둡니다. 벽에 닿지 않고 공중에 떠 있는 셈입니다. 이 방식을 토카막이라고 부릅니다. 대전 유성구에 있는 케이스타가 바로 이 도넛입니다. 지름이 10미터쯤 되는 장치입니다.
자석이 벽 쪽으로 가는 것을 밀어낸다고만 생각하면 조금 어긋납니다. 자석은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꿰어 둡니다. 자기장을 걸면 보이지 않는 꼬치가 무수히 생기고, 전기를 띤 알갱이는 그 꼬치 하나에 꿰여 빙글빙글 돌면서 꼬치를 따라서만 움직입니다. 그런데 꼬치에도 끝이 있어서, 끝까지 가면 톡 빠져 버립니다. 그래서 꼬치를 둥글게 말아 도넛으로 만듭니다. 끝이 없으니 알갱이는 끝없이 돌기만 하고 밖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이제 뉴스에서 왜 그런 이상한 기사가 나오는지 알 수 있습니다. 1억 도를 몇 초 유지했다는 기사요. 온도를 올리는 것보다 그 상태를 흐트러지지 않게 붙잡고 있는 것이 훨씬 어렵기 때문입니다.
붙고 나면 무엇이 나오나
원자핵 둘이 붙으면 헬륨 하나와 하나가 나옵니다. 그런데 저울에 달아 보면 이상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붙어서 나온 것을 다 합쳐도 원래 둘을 더한 것보다 아주 조금 가볍습니다. 그 사라진 무게가 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둘의 운명이 갈립니다.
헬륨은 전기를 띠고 있습니다. 그러니 자석이 붙잡습니다.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안에서 계속 돌면서 플라스마를 데웁니다. 불 안에 켜 둔 난로 노릇을 하는 셈입니다.
중성자는 전기가 없습니다. 자석이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자기장을 그대로 통과해 곧장 벽으로 날아가 부딪힙니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이 갈림이 뒷이야기의 열쇠입니다. 안에 남는 쪽은 불을 계속 살려 주고, 밖으로 나가는 쪽은 벽을 때려 장치를 상하게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얻어맞는 벽에서 전기를 얻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합니다.
순서를 한 번에 훑고 싶으면 도구 페이지 맨 위에 1분짜리 영상을 걸어 두었습니다. 태양 속 1500만 도에서 시작해 물을 끓이는 데까지 갑니다.
글로 읽으면 어디가 어려운지 잘 안 잡힙니다. 아래 판에서 직접 해 보세요. 원자핵 둘을 온도를 올려 가며 부딪쳐 보고, 1억 도를 자석으로 띄워 붙잡아 보면 온도만 올려서는 왜 안 되는지 보입니다.
도구 1억도를 담는 그릇 — 핵융합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 맨 위 1분 영상으로 한 번 훑고, 연료를 뽑는 데서 전기가 나오는 데까지 여섯 걸음을 움직이는 그림으로 따라가고, 수많은 원자핵이 든 통의 온도와 밀도를 직접 올려 보고, 태양과 케이스타를 나란히 돌려 봅니다. 온도만 올려서는 왜 안 되는지, 태양보다 왜 더 뜨거워야 하는지가 손에 잡힙니다.여기부터 조금 더
태양보다 더 뜨거워야 하는 이유
태양 중심의 온도는 1천5백만 도쯤입니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1억 도보다 한참 낮습니다. 태양이 더 시원한데 우리가 더 뜨거워야 한다니 이상하게 들립니다.
차이는 무게입니다. 태양은 제 무게로 가운데를 짓누릅니다. 그 압력에 눌려 원자핵들이 촘촘하게 붙어 있으니, 그다지 빠르지 않아도 자주 부딪힙니다. 지구에는 그런 중력이 없습니다. 밀도로 못 채우는 몫을 온도로 벌충해야 하고, 그래서 태양보다 몇 배 더 뜨거워야 합니다.
계산대로라면 태양도 타면 안 된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일이 하나 나옵니다. 태양 속 온도에서 원자핵이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계산해 보면, 서로 밀어내는 힘을 넘기에는 한참 모자랍니다. 한참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모자랍니다. 고전 물리로만 따지면 태양은 타고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태양은 타고 있습니다.
이 계산은 1930년대에 이미 나왔습니다. 밀어내는 벽을 정면으로 넘으려면 30억 도가 필요하다는 값이었고, 사람들은 크게 낙담했습니다. 그런 온도는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답은 원자핵이 우리가 떠올리는 그런 공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정확한 자리에 딱 놓인 알갱이가 아니라 번져 있는 파도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언덕 너머에도 아주 옅게 번져 있고, 아주 가끔 언덕을 넘지도 않은 채 반대편에 그냥 나타납니다. 이것이 입니다.
그런데 양자역학으로 다시 계산해 보니 1억 도면 됐습니다.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통과하는 길이 있으니, 벽 꼭대기까지 갈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30억이 1억이 된 것, 이것이 핵융합을 살렸습니다. 1억 도도 엄청나지만, 30억 도는 아예 시도할 수 없는 숫자였습니다.
연료는 바닷물에 있다
지구에서 쓰려는 연료는 중수소와 삼중수소입니다. 둘 다 수소의 입니다. 중수소는 바닷물에서 뽑아냅니다. 삼중수소는 자연에 거의 없어서 리튬으로 만들어 씁니다. 연료 1그램이 석유 8톤에 맞먹는 에너지를 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바닷물에 있다니 흔할 것 같지만 아주 흔하지는 않습니다. 수소 6400개에 하나꼴로 섞여 있습니다. 생수 2리터 한 병에 든 중수소를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모아 봐야 0.07그램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1그램이 석유 8톤이라고 했으니, 이 0.07그램도 적은 양이 아닙니다. 묽게 섞여 있어도 바다가 그만큼 넓습니다.
이 방식에는 몇 가지 성질이 따라옵니다. 반응이 저절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조건이 조금만 흐트러지면 그냥 꺼집니다. 폭주할 구조가 아닙니다. 대신 반응에서 튀어나오는 중성자가 장치의 벽을 계속 때리기 때문에, 그 벽을 무엇으로 만들 것인가가 또 하나의 큰 숙제입니다.
초가 뉴스가 되는 자리
핵융합에는 조건이 세 가지 있습니다. 얼마나 뜨거운가, 얼마나 촘촘한가, 그리고 얼마나 오래 붙잡는가. 앞의 둘은 어느 정도 손에 넣었고, 지금 다투는 것은 세 번째입니다.
왜 오래 붙잡는 것이 어려운지는 도넛 모양 자체에 이유가 있습니다. 꼬치를 곧게 세워 두면 어디나 고릅니다. 그런데 둥글게 마는 순간 안쪽과 바깥쪽이 달라집니다. 안쪽은 꼬치가 촘촘하고 바깥쪽은 성깁니다. 플라스마는 잔뜩 눌러 둔 풍선 같은 것이라, 풍선을 한쪽만 세게 누르면 반대쪽이 뿅 튀어나오듯 힘이 약한 쪽으로 빠져나가 버립니다.
그래서 꼬치를 그냥 마는 것이 아니라 비틀어서 맙니다. 나선형으로 꼬아 두면 알갱이가 안쪽과 바깥쪽을 번갈아 지나가면서 차이가 서로 지워집니다. 이 원리는 1960년대에 나왔고, 이 모양의 장치를 토카막이라고 부릅니다. 원리를 안 지 6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48초인 것은, 이렇게 해 두어도 플라스마가 자꾸 새 길을 찾아 빠져나가기 때문입니다.
케이스타는 1억 도 상태를 30초 붙잡아 세계 기록을 세웠고, 그 뒤 48초까지 늘렸습니다. 안쪽에서 플라스마의 열을 정면으로 받아 내는 부품을 탄소에서 텅스텐으로 바꾼 것이 컸습니다. 다음 목표는 300초, 그러니까 5분입니다. 5분을 넘기면 그때부터는 원리 확인이 아니라 계속 돌리는 문제로 성격이 바뀝니다.
발전소는 아직 없습니다. 지금 프랑스 남부에서는 여러 나라가 돈을 모아 훨씬 큰 장치를 짓고 있고, 우리나라도 거기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케이스타에서 얻은 것들이 그쪽으로 넘어갑니다.
왜 자석이 초전도여야 하나
자석 이야기를 하나 더 해야 합니다. 보통 전자석은 구리 코일에 전류를 흘려 만듭니다. 그런데 전류가 흐르면 저항 때문에 열이 나고, 핵융합에 필요한 만큼 센 자석은 그 열로 제 코일이 녹습니다. 몇 초는 버티지만 하루 종일은 못 돌립니다.
발전소는 하루 종일 돌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항이 0인 코일이 필요하고, 초전도는 영하 269도에서만 됩니다. 결국 한 장치 안에 1억 도와 영하 269도가 몇 미터 사이를 두고 같이 있게 됩니다. 지구에서 가장 뜨거운 곳과 가장 차가운 곳이 붙어 있는 셈입니다.
온도는 어떻게 잴까요. 1억 도에 온도계를 꽂을 수는 없습니다. 답은 별의 온도를 재는 법과 같습니다. 뜨거운 것은 빛을 내고, 얼마나 뜨거운지에 따라 빛의 색이 달라집니다. 플라스마가 내는 빛을 받아 그 색을 읽습니다. 땅 위에 만든 태양을 하늘의 별 재던 자로 재는 셈입니다.
이 일을 하는 사람이 되려면
핵융합 연구소에 물리학과 출신만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장치 하나에 서로 다른 공부가 여럿 필요합니다.
- 플라스마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다루는 사람 — 물리학과 쪽입니다.
- 1억 도를 붙잡을 자석을 만드는 사람 — 초전도와 전기공학 쪽입니다.
- 도넛 모양 진공 용기와 냉각 구조를 설계하는 사람 — 기계공학 쪽입니다.
- 중성자에 얻어맞아도 버티는 벽을 찾는 사람 — 재료공학 쪽입니다.
- 그 자석을 영하 269도로 유지하는 냉각 설비를 날마다 돌보고 고치는 사람 — 극저온 설비와 기계 정비 쪽입니다.
- 흐트러지려는 플라스마를 실시간으로 붙잡아 주는 사람 — 제어와 전산 쪽입니다.
그러니까 수학이 특별히 강하지 않아도, 기계를 만지는 것이 좋거나 재료의 성질이 궁금한 사람에게도 자리가 있습니다. 한 가지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길이 한곳으로 모입니다.
다섯째 줄이 이 분야의 뜻밖의 자리입니다. 자석을 영하 269도로 유지하는 냉각 설비는 배관과 밸브와 계기로 이루어진 커다란 냉장고입니다. 대학에서 물리를 하지 않은 사람도 들어갈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이 냉장고가 서면 자석이 초전도 상태를 잃고 실험이 통째로 멈춥니다. 1억 도를 만드는 일이 냉장고를 지키는 일에서 시작되는 셈입니다.
이 사람들이 실제로 모여 있는 곳이 대전 유성구의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입니다. 지도에서 대전을 열면 그 자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답하지 않은 것이 하나 남았습니다. 1억 도를 만들어 놓고, 그 열을 도대체 어떻게 전기로 바꾼다는 걸까요. 답이 좀 허무합니다. 다음 편에서 합니다.
남은 질문태양을 흉내 내는 데 가장 어려운 것이 불이 아니라 그릇이었다면 — 우리가 아직 못 만든 그릇에는 또 무엇이 담겨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