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다 러브레이스
기계가 숫자 말고 다른 것도 다룰 수 있을까?
그때 그곳
시인 바이런의 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딸이 아버지의 기질을 물려받을까 두려워 어릴 때부터 수학을 가르쳤습니다.
그가 만난 것은 배비지의 해석기관이었습니다. 톱니바퀴로 계산하는 기계였는데, 설계도만 있고 끝내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왜 이 질문이었나
그는 이탈리아 수학자가 이 기계에 대해 쓴 해설을 영어로 옮기는 일을 맡았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주석을 붙였는데, 주석이 원문의 세 배가 되었습니다.
주석 안에서 그는 배비지가 생각하지 않은 곳까지 갔습니다.
알아낸 것
주석 하나에는 베르누이 수를 구하는 절차가 단계별로 적혀 있습니다. 기계가 따라야 할 순서를 미리 적어둔 것이죠. 흔히 최초의 프로그램이라 불립니다.
하지만 더 멀리 간 것은 다른 대목입니다. 그는 이 기계가 숫자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고 봤습니다. 사물들 사이의 관계를 기호로 나타낼 수만 있다면, 음악이든 무엇이든 다룰 수 있다고요.
계산기가 아니라 상징을 다루는 기계라는 발상입니다. 100년 뒤 튜링이 도달하는 곳입니다.
동시에 그는 이렇게도 적었습니다. 이 기계는 사람이 시킬 줄 아는 것만 할 수 있고, 스스로 무엇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고요. 튜링은 훗날 이 대목을 러브레이스의 반론이라 부르며 정면으로 다룹니다.
이전 생각
계산 기계는 숫자를 다루는 물건
증거
해석기관 해설에 붙인 주석들 — 원문의 세 배 분량
그 뒤
해석기관은 끝내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글은 기계 없이 100년을 건너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