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 · 포돌스키 · 로젠
멀리 떨어진 두 입자가 서로를 알고 있을까?
그때 그곳
아인슈타인은 1933년 나치를 피해 프린스턴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솔베이에서 시작된 논쟁을 8년째 놓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그의 반론은 늘 같은 방식이었습니다. 불확정성 원리를 기술적으로 피해가는 장치를 상상하는 것이었죠. 그리고 보어는 매번 그 장치의 허점을 찾아냈습니다. 이 방식으로는 이길 수 없었습니다.
왜 이 질문이었나
1935년, 그는 젊은 동료 포돌스키, 로젠과 함께 방식을 바꿨습니다. 장치를 만들지 않고 논리만으로 몰아붙이기로 했습니다.
두 입자가 한 번 부딪친 뒤 반대 방향으로 멀어진다고 합시다. 부딪히는 순간 둘의 운동량 합은 정해집니다. 위치의 차이도 정해집니다.
한참 지나 두 입자가 아주 멀어진 뒤, 이쪽 입자의 위치를 잽니다. 그러면 저쪽 입자의 위치를 계산으로 즉시 알 수 있습니다. 대신 이쪽 입자의 운동량을 재면, 저쪽 입자의 운동량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을 재든 저쪽 입자는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쪽 입자의 위치도, 운동량도,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알아낼 수 있습니다.
알아낸 것
논문 제목 자체가 물음이었습니다. 물리적 실재에 대한 양자역학의 기술은 완전하다고 볼 수 있는가.
저자들의 답은 아니오였습니다. 논리적으로 두 가지 중 하나여야 합니다.
하나. 저쪽 입자의 값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고, 양자역학이 그것을 적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양자역학은 틀리지는 않았지만 불완전합니다. 아직 우리가 모르는 숨은 변수가 있는 것이죠.
둘. 이쪽에서 한 일이 멀리 있는 저쪽에 즉시 영향을 준다. 아인슈타인은 이것을 유령 같은 원격작용이라고 불렀습니다. 빛보다 빠른 것은 없다는 상대성이론과 정면으로 부딪칩니다.
그에게 둘째는 말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첫째. 숨은 변수가 있을 것이다.
보어는 6주 만에 같은 제목으로 답했습니다. 그런데 그 반박은 지금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이 논쟁은 실험으로 가릴 방법이 없어 보였습니다. 양쪽 다 똑같은 실험 결과를 예측했기 때문입니다. 물리학자들은 이것을 철학 문제로 밀어놓고 30년 가까이 다른 일을 했습니다.
양자역학의 확률은 자연 자체의 성질이며, 그 밑에 미리 정해진 값 같은 것은 없다
없다 — 이것은 실험이 아니라 논증이었고, 실험으로 가릴 수 없다는 점이 바로 문제였다
29년 뒤 존 벨이 이 논증을 실험으로 판정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