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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풀이

1935년, 두 통의 반론 — 얽힘과 고양이

장갑 한 짝을 서울에, 다른 한 짝을 부산에 보냅니다. 서울에서 왼손을 확인하는 순간 부산 것이 오른손임을 압니다. 여기에 신비는 없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도 이런 것이어야 한다고 했고, 슈뢰딩거는 고양이를 상자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30년 뒤, 한 사람이 이 논쟁을 실험대 위에 올려놓습니다.

이 글이 꿰는 질문들 47분 분량갱신 2026-08-12

1935년,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의 이상한 부분도 결국 이런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재기 전에 값이 없는 게 아니라, 값은 처음부터 있었는데 이론이 그걸 적지 못하는 것뿐이라고요.

논증은 흠잡을 데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재보니 장갑이 아니었습니다.

얽힘

두 입자를 하나의 사건에서 함께 만들면, 둘의 성질이 서로 묶입니다. 하나가 위로 돌면 다른 하나는 반드시 아래로 도는 식으로요. 어느 쪽이 위인지는 정해져 있지 않고, 둘의 관계만 정해져 있습니다.

이것을 이라고 합니다. 둘을 아무리 멀리 떼어놓아도 이 묶임은 풀리지 않습니다.

첫 번째 반론 — EPR

1935년 5월, 아인슈타인과 포돌스키와 로젠이 짧은 논문을 냅니다. 세 사람의 성을 따 EPR 논문이라 부릅니다.

  1. 얽힌 두 입자를 아주 멀리 떼어놓는다. 이쪽을 재면 저쪽 값이 즉시 정해진다.
  2. 이쪽에서 한 일이 저쪽에 즉시 영향을 줄 수는 없다. 어떤 영향도 빛보다 빠를 수 없으니까.
  3. 그렇다면 저쪽 값은 재기 전부터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4. 그런데 양자역학은 재기 전에 값이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양자역학은 틀린 것이 아니라 불완전하다.

양자역학이 옳다면 멀리 떨어진 것들이 즉시 연결되어야 하는데, 그건 있을 수 없다. 그러니 우리가 아직 모르는 가 있어서 값을 미리 정해두고 있을 것이다 — 이것이 아인슈타인의 그림이었습니다. 장갑 그림이죠.

유령 같은 원격 작용.아인슈타인이 이 상황을 부른 말

두 번째 반론 — 고양이

같은 해 가을, 슈뢰딩거가 다른 각도에서 반론을 씁니다.

상자 안에 고양이를 넣습니다. 함께 방사성 원자 하나와, 그 원자가 붕괴하면 깨지는 독병을 넣습니다. 한 시간 뒤 원자가 붕괴했을 확률은 반반입니다.

그가 겨눈 곳은 정확합니다. 전자는 중첩이어도 그러려니 하겠는데 고양이는 곤란합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양자이고 어디부터가 고전인가. 그 선이 어디 그어져 있습니까.

이론 어디에도 그 선은 적혀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고, 지금도 열려 있습니다.

여기부터 조금 더

두 반론이 나온 뒤 30년 가까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보어의 답변은 길고 모호했습니다. 대부분의 물리학자는 이 문제를 철학이라며 미뤄두었습니다. 어차피 계산은 잘 맞았고, 그 계산으로 만들 것이 많았으니까요. 어느 쪽이 옳은지 가릴 방법이 없어 보였다는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취미로 한 일

1964년, 존 벨은 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가속기 물리학자였습니다. 이 문제는 그의 본업이 아니라 오래 마음에 걸려 있던 일이었습니다. 안식년에 쓴 짧은 논문이 그 결과입니다.

그의 통찰은 이것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그림이 맞다면, 실험 결과들 사이에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생긴다.

세 가지 질문

부등식 자체는 양자역학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냥 셈입니다. 사람으로 바꿔 보면 이렇습니다.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세 가지 특징이 있다고 합시다. 키가 큰가, 안경을 썼는가, 왼손잡이인가. 사람마다 세 답이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얽힌 입자로 이 셈을 합니다. 세 가지 특징 대신 검출기를 세 가지 각도로 놓고, 두 입자를 각각 다른 각도로 재는 것이죠. 답이 미리 정해져 있다면(장갑이라면) 이 부등식을 어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양자역학은 이것을 어기는 결과를 예측합니다.

설명할 수 없는 차이결과가 어긋날 확률값이 미리 정해져 있다면 넘을 수 없는 선양자역학의 예측 · 실제 측정값두 검출기의 각도 차이 →
두 검출기의 각도 차이를 벌려가며 결과가 어긋날 확률을 잰 그림입니다. 값이 미리 정해져 있다면 각도를 두 배로 벌릴 때 어긋남도 많아야 두 배가 되어야 하고, 그 한계가 직선입니다. 양자역학의 예측은 그 아래로 내려갑니다. 두 선 사이의 간격이 실험으로 잴 수 있는 차이입니다.

재보았더니

1972년 존 클라우저가 처음으로 이 실험을 했습니다. 그는 아인슈타인이 옳기를 바랐고, 자기 실험이 숨은 변수 쪽 손을 들어주리라 기대했습니다.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초기 실험에는 빠져나갈 구멍이 있었습니다. 검출기 각도가 미리 정해져 있으면 입자가 그것을 '알고' 맞출 수도 있다는 것이었죠. 1982년 알랭 아스페는 입자가 날아가는 도중에 각도를 바꿔버리는 방식으로 이 구멍을 막았습니다.

  1. 1935EPR과 고양이 — 두 통의 반론
  2. 1964벨 — 실험으로 가릴 수 있다
  3. 1972클라우저 — 처음 재보다. 자기 기대와 반대 결과
  4. 1982아스페 — 날아가는 도중에 각도를 바꾸다
  5. 2015델프트 — 남은 구멍까지 막은 실험
  6. 2022노벨상 — 클라우저 · 아스페 · 차일링거

결과는 한 방향으로만 나왔습니다. 장갑이 아니었습니다. 값은 미리 정해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통신이 되지는 않는다

여기서 반드시 끊어야 할 오해가 있습니다. 얽힘으로 빛보다 빠른 통신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양자 얽힘으로 순간이동'이나 '의식이 얽혀 있다' 같은 이야기가 여기서 팔립니다. 얽힘은 두 결과의 상관관계이지 한쪽에서 저쪽으로 무언가를 보내는 일이 아닙니다.

쓸모는 다른 데 있습니다. 얽힌 입자를 훔쳐보면 반드시 흔적이 남기 때문에, 도청을 원리적으로 알아챌 수 있는 암호가 만들어집니다. 양자컴퓨터가 여러 계산을 한꺼번에 다루는 것도 얽힘을 쓰는 일입니다.

고양이는 왜 안 보이나

슈뢰딩거의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전자는 중첩인데 고양이는 왜 아닌가.

현대의 대답 절반은 입니다. 고양이만 한 것은 공기 분자와 빛 알갱이와 자기 몸의 원자들에 끊임없이 부딪히고, 그때마다 가 바깥으로 새어 나갑니다(3편). 그 시간이 상상할 수 없이 짧아서 중첩이 유지될 틈이 없습니다.

틀린 채로 가장 생산적이었던 반론

아인슈타인은 졌습니다. 그의 그림은 실험으로 부정되었습니다.

그런데 EPR 논문은 그가 쓴 모든 논문 가운데 가장 많이 인용되는 글이 되었습니다. 상대성이론보다도요. 양자정보라는 분야 전체가 이 반론에서 나왔고, 얽힘이 자원이라는 생각도 여기서 시작됐습니다.

다섯 편을 지나와서

난로의 색을 계산하려다 에너지가 낱개라는 것을 알았고(1편), 그 낱개 때문에 전자의 자리가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았고(2편), 그 자리를 파동으로 적었더니 무엇이 파동인지 알 수 없게 되었고(3편), 위치와 운동량을 함께 갖는 상태가 아예 없다는 것을 알았고(4편), 멀리 떨어진 것들이 우리가 생각한 방식으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백 년 동안 이 이론은 한 번도 틀린 예측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백 년 동안 이 이론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남은 질문틀린 적 없는 계산을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해한다는 것은 계산이 맞는 것과 다른 무엇일까요? 아니면 언젠가 익숙해지는 것을 우리는 이해라고 부르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