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이상했다
에미 뇌터
강의 공고에 남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괴팅겐 대학은 그에게 자리를 주지 않았습니다. 힐베르트는 자기 이름으로 강의를 공고하고 그를 강단에 세웠습니다.
여성이 대학에서 강의하려면 교수자격을 받아야 했는데, 학부 교수회가 이를 거부했습니다. 반대 논리는 이랬습니다. 여성이 교수단에 들어오면 참전 군인들이 여자에게 배우게 된다는 것이었죠.
힐베르트가 회의에서 이렇게 답했다고 전해집니다. 후보의 성별이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 여기는 대학이지 목욕탕이 아니다.
그래도 표결은 통과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힐베르트는 자기 이름으로 강의를 공고하고, 실제 강의는 뇌터가 했습니다. 여러 학기 동안 그렇게 했습니다.
1933년 나치 정권이 유대인 교원을 대학에서 몰아냈습니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브린모어 칼리지에서 가르쳤고, 2년 뒤 수술 후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쉰셋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뉴욕타임스에 보낸 추모 글에서 그를 여성 교육이 시작된 이래 가장 중요한 창조적 수학 천재라고 불렀습니다.
남은 질문대칭이 보존을 낳는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이 정작 자기 이름을 강의 공고에 올리지 못했다면 — 학문은 어디에서 보존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