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 ATLAS· 과학 아틀라스

개념 풀이

테넷 — 엔트로피가 줄어들면 시간이 거꾸로 갈까

이 영화를 어렵다고 느끼는 대부분의 이유는 하나입니다. 엔트로피가 줄어드는 것과 시간이 거꾸로 가는 것을 같은 말로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엔트로피가 줄어드는 일은 지금 부엌의 냉장고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냉장고가 과거로 가지는 않습니다.

이 글이 꿰는 질문들 45분 분량갱신 2026-08-12

이 질문 하나가 《테넷》 전체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어렵게 만드는 지점도 정확히 여기에 있습니다.

첫 번째 — 법칙에는 방향이 없다

놀라운 사실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물리학의 기본 법칙들은 대부분 시간의 방향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뉴턴의 운동 법칙에 시간을 거꾸로 넣어도 식은 그대로 성립합니다. 전기와 자기의 법칙도, 상대성이론도 그렇습니다. 법칙만 보면 과거로 가는 것과 미래로 가는 것이 똑같이 정상입니다.

방향을 가진 법칙은 딱 하나뿐입니다. . 엔트로피는 늘어나기만 한다는 것.

두 번째 — 엔트로피는 확률이다

가 무엇인지부터 짚고 가겠습니다. 어렵게 정의하지 않아도 됩니다.

012345678910그렇게 되는 방법의 수왼쪽에 몇 개전부 한쪽에 · 1가지반반 · 252가지
구슬 열 개를 상자 두 칸에 나눠 넣습니다. 전부 왼쪽에 몰리는 방법은 딱 한 가지인데, 다섯 개씩 나뉘는 방법은 252가지입니다. 상자를 흔들면 가운데 쪽으로 가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힘이 미는 게 아니라 그쪽이 압도적으로 많은 겁니다. 구슬이 스무 개, 백 개로 늘면 이 치우침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그래서 엔트로피가 늘어난다는 것은 법칙이라기보다 셈입니다. 금지되어 있는 게 아니라 그럴 확률이 터무니없이 낮은 것입니다.

세 번째 — 여기가 중요합니다

이제 이 영화를 이해하는 열쇠가 되는 자리입니다.

엔트로피가 줄어드는 일은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슈뢰딩거는 1944년 강연에서 생명이 하는 이 일을 를 먹는 것이라고 불렀습니다. 나중에 네겐트로피라는 말로 줄여 부르게 됩니다.

자, 이제 결정적인 질문입니다.

냉장고 안엔트로피 ↓바깥엔트로피 ↑↑합계는 늘어난다시간은 안팎 모두 이쪽으로
냉장고 안쪽의 엔트로피는 줄어듭니다. 대신 바깥으로 더 많이 내보내 전체로는 늘어납니다. 그런데 안쪽이든 바깥이든 시간은 같은 쪽으로 갑니다. 국소적으로 엔트로피가 줄어드는 일은 흔하고, 그때에도 시간의 화살은 뒤집히지 않습니다.

그러니 《테넷》이 상상한 것은 국소적으로 엔트로피가 줄어드는 상태가 아닙니다. 그건 냉장고가 이미 하고 있으니까요.

영화가 상상한 것은 어떤 물체의 시간 방향 자체가 뒤집힌 상태입니다. 그 물체에게는 우리의 미래가 과거이고, 우리의 과거가 미래입니다. 엔트로피가 줄어드는 것은 그 상태의 원인이 아니라 바깥에서 본 증상입니다.

여기부터 조금 더

그렇다면 그 상상은 어디서 왔을까요. 아무 데서도 오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시간을 거스르는 입자는 실제로 있다

1928년, 폴 디랙이 전자를 적는 식을 세웠는데 답이 두 개 나왔습니다. 하나는 전자였고 다른 하나는 전자와 똑같은데 전기 부호만 반대인 무엇이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버리지 않고 실제로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4년 뒤 이 실제로 발견됩니다.

그리고 20년 뒤, 파인만과 스튀켈베르크가 이 반입자를 다르게 읽는 방법을 내놓습니다.

《테넷》의 역행이 빌려온 곳이 여기입니다. 총알이 벽에서 나와 총으로 돌아가는 장면은, 파인만의 그림을 사람 크기로 키워본 상상입니다.

이론에 있는 것

입자 하나를 시간 거꾸로 가는 것으로 기술할 수 있다. 계산이 맞고 실제로 쓰인다. 다만 그 입자는 반입자로 관찰되지, 우리 세계를 거슬러 걸어 다니지 않는다.

영화가 키운 것
영화에 있는 것

사람과 자동차와 총알이 통째로 방향을 뒤집는다. 수많은 입자가 한꺼번에, 서로 어긋나지 않게 뒤집혀야 하는데, 그 방법은 이론에 없다.

영화가 스스로 정한 규칙

이 영화가 공들인 부분은 설정을 세운 뒤 끝까지 지킨다는 것입니다.

역행 상태의 인물은 산소마스크를 씁니다. 왜일까요. 공기는 정방향인데 폐가 역방향이면 숨을 들이쉬는 동작이 공기를 밀어내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리 준비된 공기를 따로 써야 합니다.

할아버지 역설과 그 답

과거로 갈 수 있다면 곧바로 따라오는 물음이 있습니다. 과거로 가서 자기 할아버지를 해치면 어떻게 되는가. 그러면 자기가 태어나지 못하고, 태어나지 못하면 과거로 갈 수도 없습니다.

영화의 답은 한 줄로 나옵니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다.

닐의 마지막이 그래서 슬픕니다. 그는 자기가 언제 죽는지 이미 알고 그 자리로 걸어 들어갑니다. 그리고 주인공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이것이 아름다운 우정의 끝이지만, 나에게는 시작이라고요.

그래도 남는 문제

영화가 지키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이건 흠이라기보다 이론이 답을 주지 않는 자리입니다.

  1. 역행 상태의 사람에게 기억은 어느 쪽으로 쌓이는가. 기억은 뇌 안의 엔트로피가 늘어나며 남는 흔적이라, 방향이 뒤집히면 기억도 지워지며 가야 한다. 그러면 그는 자기가 무엇을 하러 왔는지 알 수 없다.
  2. 한 사람을 이루는 원자 전부가 어긋나지 않고 함께 뒤집히는 방법이 이론에 없다.
  3. 역행하는 물체와 정방향 물체가 부딪히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도 정해져 있지 않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컵이 깨지는 영상만 이상했던 이유로 돌아가 봅시다.

당구공 두 개에는 흩어지는 방법도 모이는 방법도 몇 가지 안 됩니다. 그래서 어느 쪽으로 틀어도 그럴듯합니다. 그런데 컵 조각은 수억 개의 알갱이로 되어 있고, 그것들이 정확히 제자리로 돌아가 컵이 될 방법은 사실상 하나뿐입니다.

  1. 1824카르노 — 열은 한쪽으로만 흐른다
  2. 1865클라우지우스 — 엔트로피라는 이름을 붙이다
  3. 1877볼츠만 — 엔트로피는 경우의 수다
  4. 1928디랙 — 식의 두 번째 답, 반물질
  5. 1944슈뢰딩거 — 생명은 음의 엔트로피를 먹는다
  6. 1949파인만 — 반입자는 시간을 거스르는 입자다
  7. 1990노비코프 — 앞뒤가 맞는 역사만 일어난다
  8. 2020테넷
남은 질문엔트로피가 줄어드는 일은 냉장고 안에서도 일어나는데, 그때 시간은 뒤집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시간이 흐른다고 느끼는 것은 무엇을 느끼는 걸까요? 컵이 깨지는 것을 보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그 순서를 기억하고 있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