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풀이
모르는 게 아니라 없는 것 — 불확정성 원리
아주 짧은 소리에는 음높이가 없습니다. 재는 장비가 나빠서가 아니라 짧은 소리에 음높이라는 것이 아예 담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자에게 위치와 운동량이 그렇습니다. 불확정성 원리는 측정 이야기가 아니라 존재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가 전자의 위치와 속도 이야기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같은 이야기가 되는지 따라가 봅시다.
짧은 소리에는 음높이가 없다
음높이는 1초에 몇 번 떠느냐입니다(). 440번 떨면 라, 523번 떨면 도입니다.
그런데 몇 번 떠는지 알려면 여러 번 떠는 것을 들어야 합니다. 한 번 반 떨다 끝나면 1초에 몇 번인지 셀 방법이 없습니다.
여기서 꼭 짚어둘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양자역학이 아닙니다. 소리든 물결이든 라디오 전파든, 이면 무엇이든 따르는 성질이고 순수한 수학입니다. 양자역학이 나오기 백 년 전부터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자가 파동이라면
2편에서 두 가지를 보았습니다. 전자는 이고, 전자의 파장은 곧 입니다. 파장이 짧을수록 운동량이 큽니다.
그러면 위의 맞바꿈이 그대로 전자에게 옮겨옵니다.
동그란 네모를 못 그리는 것이 그림 실력 탓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실력을 아무리 길러도 동그란 네모는 안 나옵니다. 그런 것이 없으니까요.
여기부터 조금 더
그런데 이 원리를 처음 내놓은 사람은 이렇게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하이젠베르크의 현미경
1927년 2월, 코펜하겐. 스물다섯의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이런 사고실험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전자가 어디 있는지 보려면 전자에 을 쏘아 되돌아온 빛을 봐야 합니다. 그런데 빛도 알갱이라(1편) 전자를 걷어찹니다. 위치를 더 정확히 보려면 파장이 짧은 빛을 써야 하는데, 파장이 짧은 빛은 알갱이 하나가 더 셉니다. 더 잘 볼수록 더 세게 걷어차입니다.
직관적이고 기억하기 좋은 설명이라 지금도 가장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설명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재는 행위가 대상을 건드린다. 체온계를 담그면 물의 온도가 조금 변하는 것처럼. 더 조심스럽게 재면 줄일 수 있고, 고전 세계에도 있는 이야기다.
재기 전부터 그런 상태가 없다. 아무리 조심해도 줄지 않는다. 측정과 상관없이 파동의 성질에서 나온다.
이 점을 지적한 사람이 보어였습니다. 두 사람은 몇 주 동안 심하게 다퉜고, 하이젠베르크는 논문 교정 단계에서 보완하는 주석을 붙여야 했습니다.
보어의 대답
보어가 내놓은 정리는 이었습니다. 파동 그림과 알갱이 그림은 둘 다 필요한데 한 실험에서 동시에 쓸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3편의 이중슬릿이 정확히 그 예입니다. 줄무늬를 볼 것인가, 어느 틈으로 갔는지를 볼 것인가. 둘 중 하나만 됩니다. 장치를 어떻게 놓느냐가 무엇을 볼 수 있는지를 정하고, 두 그림을 한 장에 겹쳐 놓을 방법은 없습니다.
코펜하겐 해석
1927년 10월, 브뤼셀의 솔베이 회의에 당대 물리학자 스물아홉 명이 모입니다. 여기서 정리된 입장이 뒷날 이라 불립니다. 사실 하나의 문서가 있는 것은 아니고, 보어와 하이젠베르크와 보른의 견해를 나중에 묶어 붙인 이름입니다.
- 파동함수는 실재하는 무엇이 아니라,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것들의 목록이다.
- 재기 전에는 값이 없다. 재는 순간 하나로 정해진다.
- 왜 그렇게 정해지는지는 묻지 않는다.
두 번째를 라고 부릅니다. 온 공간에 퍼져 있던 파동이 재는 순간 한 점으로 접히는 것처럼 기술됩니다.
무너진 것은 결정론
1814년, 라플라스는 이렇게 상상했습니다. 어떤 지성이 지금 이 순간 모든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안다면, 그는 우주의 모든 미래와 과거를 계산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요.
불확정성 원리가 무너뜨린 것은 그 계산이 아닙니다. 계산의 출발점입니다. 모든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함께 아는 상태라는 것이 자연에 없습니다. 정보가 모자란 것이 아니라 그런 목록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빈 공간이 비어 있지 않다
이 원리에는 짝이 하나 더 있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는 도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입자 한 쌍이 잠깐 생겼다가 사라지는 일이 허용됩니다. 오래 못 버티고 곧 되돌아가면 장부가 맞으니까요. 진공은 고요한 빈 곳이 아니라 끊임없이 들끓는 곳이 됩니다.
이것은 상상이 아닙니다. 아주 가까이 놓인 두 금속판 사이에 이 요동 때문에 밀리는 힘이 생기는데, 실제로 측정됐습니다. 수소 원자의 에너지 준위가 이론값에서 아주 조금 어긋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 1814라플라스 — 모든 것을 알면 미래를 계산할 수 있다
- 1927.2하이젠베르크 — 현미경 사고실험으로 불확정성을 내놓다
- 1927.9보어 — 상보성. 두 그림은 둘 다 필요하고 동시에 못 쓴다
- 1927.10솔베이 회의 — 뒷날 코펜하겐 해석이라 불릴 입장이 서다
- 1935두 통의 반론이 도착한다
납득하지 못한 사람들
코펜하겐의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재기 전에는 값이 없다. 재는 순간 정해진다. 왜인지는 묻지 마라.
이 대답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1편에서 양자가 실재한다고 가장 먼저 밀어붙였던 그 사람입니다. 그리고 3편에서 자기 식이 확률표로 읽히는 것을 끝내 싫어했던 사람도요.
두 사람은 1935년에 각자 반론을 씁니다. 하나는 멀리 떨어진 두 입자 이야기였고, 다른 하나는 상자 속 고양이 이야기였습니다.
남은 질문재는 순간에 값이 정해진다면, 그 '순간'은 어디까지 미칠까요? 검출기까지? 그것을 들여다보는 사람까지? 그리고 그 전자와 짝지어 지구 반대편으로 보낸 다른 전자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