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풀이
두 곳에 동시에 있다는 말 — 중첩과 확률
전자를 한 알씩, 서로 부딪힐 일 없게 한참 간격을 두고 쏩니다. 그런데 쌓인 자국은 줄무늬가 됩니다. 혼자 간 전자가 무엇과 겹친 걸까요. 이 실험은 백 년 동안 가장 많이 오해받은 실험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이중슬릿 실험입니다. 파인만은 여기에 양자역학의 모든 수수께끼가 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다른 데서 새로 나오는 수수께끼는 없고, 전부 이 하나의 변주라는 뜻이었습니다.
겹치면 지워지기도 한다
먼저 이 겹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부터 봅시다.
잔잔한 물에 돌 두 개를 동시에 던지면 물결이 겹칩니다. 마루와 마루가 만나는 자리는 물결이 더 커지고, 마루와 골이 만나는 자리는 서로 지워져 잔잔해집니다. 이것이 입니다.
1801년 토머스 영은 빛으로 이것을 해 보였습니다. 두 틈을 지난 빛이 벽에 밝고 어두운 줄을 번갈아 만들었습니다. 어두운 줄은 빛과 빛이 만나 서로를 지운 자리입니다. 빛은 파동이라는 결론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한 알씩 쏘면
전자로 같은 실험을 합니다. 다만 한 번에 한 알씩입니다.
전자 한 알은 스크린에 점 하나를 찍습니다. 흐릿하게 번지지 않습니다. 알갱이처럼 딱 한 자리에 한 점입니다.
그런데 점이 쌓이면 줄무늬가 드러납니다.
그래서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전자가 두 틈을 동시에 지나갔다고. 두 곳에 동시에 있었다고.
이 표현은 편하지만 정확하지 않고, 오해의 대부분이 여기서 시작됩니다.
여기부터 조금 더
2편은 전자가 라면 보어의 자리들이 설명된다는 데서 끝났습니다. 그렇다면 그 파동을 제대로 적는 식이 있어야 합니다.
슈뢰딩거의 식
1926년 초, 에르빈 슈뢰딩거가 그 식을 세웁니다. 전자를 파동으로 놓고 방정식을 풀었더니, 보어가 가정으로 넣었던 자리들이 풀이에서 저절로 나왔습니다. 억지로 넣은 것이 아니라 결과로 나온 것입니다.
게다가 이 식은 수소 말고 다른 원자에도 통했습니다. 보어의 모형이 걸려 넘어졌던 지점이었죠. 그리고 그림이 바뀝니다. 전자는 궤도를 도는 것이 아니라 핵 둘레에 퍼진 구름으로 있습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모양이 이 식의 풀이들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파동인가
식은 잘 맞았습니다. 문제는 그 식이 무엇을 적고 있느냐였습니다.
기타 줄의 파동은 줄이 실제로 오르내리는 것이고, 물결은 물이 오르내리는 것입니다. 그럼 전자의 에서는 무엇이 오르내리는 걸까요.
슈뢰딩거는 전자가 실제로 공간에 퍼진 무언가이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면 그림이 자연스러우니까요. 그런데 두 가지가 걸렸습니다.
- 퍼진 것이라면 스크린에 흐릿하게 번져야 하는데, 실제로는 늘 한 점에 한 알로 잡힌다.
- 전자가 두 개인 계를 적으면 파동이 3차원이 아니라 6차원 공간에 놓인다. 실재하는 물질이 그럴 수는 없다.
각주 하나
1926년 여름, 막스 보른이 논문의 각주에서 답을 내놓습니다. 파동함수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고, 그것을 제곱한 값이 그 자리에서 전자가 발견될 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슈뢰딩거는 이 해석을 싫어했습니다. 자기 식이 확률표로 읽히는 것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아인슈타인도 마찬가지였고, 그가 보른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 유명해집니다.
그분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으신다.아인슈타인이 보른에게, 1926
왜 확률만으로는 안 되는가
여기서 꼭 짚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결과가 확률로 나온다는 것만으로는 이중슬릿이 설명되지 않습니다.
주사위도 확률입니다. 그런데 주사위 확률은 더하면 늘어나기만 합니다. 길이 두 개 열리면 도착할 확률은 커지지, 줄어들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계산은 두 단계로 합니다. 먼저 각 길마다 이라는 것을 매기고 — 이것은 더했다 지워질 수 있는 양입니다 — 그것들을 다 더한 다음, 마지막에 제곱해서 확률로 바꿉니다.
파인만은 이 계산법을 끝까지 밀어붙여, 전자가 갈 수 있는 모든 경로에 진폭을 매기고 전부 더하는 방식으로 양자역학을 다시 적었습니다. 두 개의 틈이 무한 개의 길로 늘어난 셈입니다.
관측하면 사라진다는 말
이제 가장 많이 오해받는 부분입니다.
틈 옆에 장치를 붙여 전자가 어느 쪽으로 갔는지 알아낼 수 있게 하면, 줄무늬가 사라집니다. 두 무더기만 남습니다. 야구공처럼요.
여기서 이런 이야기가 자주 따라붙습니다. 사람이 보았기 때문에 전자가 달라졌다, 의식이 현실을 만든다, 관찰자가 세상을 결정한다.
'관측'이라는 번역어가 오해를 키운 면도 있습니다. 여기서 관측은 눈으로 보는 일이 아니라 다른 것과 얽혀 흔적을 남기는 일입니다. 전자가 검출기와 얽히는 순간, 전자만의 파동이던 것이 검출기까지 포함한 파동이 되고, 전자 쪽만 떼어 보면 간섭이 사라진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해본 사람들
오랫동안 이 실험은 이었습니다. 전자를 한 알씩 다루는 일이 불가능했으니까요.
- 1801영 — 빛으로 줄무늬를 만들다
- 1927데이비슨·거머 — 전자도 무늬를 만든다
- 1961죈손 — 전자로 이중슬릿을 실제로 실행하다
- 1974메를리 등 — 한 알씩 쏘아 무늬가 쌓이는 것을 찍다
- 1989도노무라 등 — 쌓이는 과정을 영상으로 남기다
2002년 한 물리학 잡지가 독자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실험을 물었을 때 1위로 뽑힌 것이 이 실험입니다. 장비가 단순하고 결과가 명확한데, 백 년째 아무도 그 뜻을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일 겁니다.
남은 것
전자는 퍼진 파동으로 기술되고, 잡으면 한 점에서 한 알로 잡힙니다. 그렇다면 파동으로 퍼져 있는 것을 억지로 한 점에 몰아넣으면 어떻게 될까요.
파동에는 성질이 하나 더 있습니다. 좁게 몰아넣을수록 파장이 뭉개집니다. 짧은 펄스일수록 음높이가 불분명해지는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전자에게 파장은 곧 입니다(2편).
남은 질문위치를 좁히면 파장이 흐려지고, 파장을 또렷하게 하면 위치가 퍼집니다. 이것은 우리가 재는 방식이 서투른 탓일까요, 아니면 전자가 애초에 그 둘을 함께 갖고 있지 않은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