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풀이
전자는 왜 떨어지지 않나 — 사이가 없는 도약
이론대로라면 원자는 1000억분의 1초 만에 무너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 이렇게 있습니다. 이 모순을 풀려고 스물여덟 살의 보어가 세운 가정 하나가, 불꽃놀이의 색과 별의 성분과 전자의 자리를 한꺼번에 설명하게 됩니다.
이 질문의 답을 따라가면 원자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서 물리학이 한 번 더 막힙니다.
무지개가 아니라 몇 개의 줄
나트륨 불꽃을 프리즘에 통과시켜 봅니다. 무지개가 펼쳐질 것 같지만 아닙니다. 캄캄한 바탕에 노란 줄 몇 개만 뜹니다.
수소는 수소대로, 헬륨은 헬륨대로 자기 줄만 냅니다. 위치도 개수도 원소마다 다릅니다. 이것이 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왜 몇 개의 줄뿐일까요.
빛의 색은 크기입니다(1편). 몇 가지 색만 낸다는 건 몇 가지 크기의 에너지만 내놓는다는 뜻입니다. 아무 크기나 못 냅니다.
원자는 존재할 수 없다
1911년에 밝혀진 의 속은 이랬습니다. 한가운데 아주 작고 무거운 이 있고, 그 둘레를 전자가 돕니다. 태양계를 아주 작게 줄여놓은 그림입니다.
그림은 그럴듯한데 계산을 해보면 큰일이 납니다. 당시 이미 확립된 전자기학에 따르면, 원을 그리며 도는 전하는 빛을 내놓습니다. 빛을 내놓으면 에너지를 잃고, 에너지를 잃으면 궤도가 안쪽으로 말려듭니다.
게다가 말려드는 동안 궤도가 조금씩 줄어들 테니 나오는 빛의 색도 연속으로 변해야 합니다. 무지개가 나와야 하는데 실제로는 줄 몇 개뿐입니다. 두 가지가 한꺼번에 어긋납니다.
보어의 처방
1913년, 닐스 보어는 1편의 플랑크가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이 문제를 넘어갑니다. 설명하지 않고 가정합니다.
- 전자가 있을 수 있는 자리는 정해져 있다. 아무 데나 못 있는다.
- 그 자리에 있는 동안에는 빛을 내지 않는다. 이유는 묻지 말자.
- 자리를 옮길 때만, 두 자리의 에너지 차이만큼을 빛으로 내놓는다.
세 번째 가정에서 스펙트럼선이 곧바로 나옵니다. 자리가 정해져 있으면 자리 사이의 차이도 정해져 있고, 그러면 나오는 빛의 색도 몇 가지로 정해집니다. 원소마다 자리 배치가 다르니 색 조합도 다릅니다.
그리고 첫 번째 가정이 원자가 안 무너지는 이유를 줍니다.
보어는 수소의 자리들이 어디쯤인지도 계산했습니다. 거기서 나올 빛의 색을 뽑아보니, 이미 측정되어 있던 수소의 스펙트럼선 위치와 맞았습니다.
사이가 없다
자리를 옮기는 이 사건을 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여기에 정말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일상에서 쓰는 말과 정반대라는 점도 재밌습니다. 사업이 크게 도약할 때 퀀텀 점프라고들 하는데, 실제 양자도약은 자연에서 일어나는 가장 작은 변화 중 하나입니다. 크기가 아니라 중간이 없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여기부터 조금 더
보어의 가정은 계산이 맞았지만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왜 하필 그 자리들인가. 왜 그 자리에서는 빛을 안 내는가. 답이 없었습니다.
그가 이 가정을 세운 계기는 한 장의 공식이었습니다.
중학교 교사의 수 맞추기
1885년, 스위스의 요한 발머는 예순이 넘은 여학교 교사였습니다. 그는 수소의 스펙트럼선 네 개의 파장을 들여다보다가, 그 값들이 간단한 분수식 하나로 전부 나온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왜 그런 식이 되는지는 몰랐습니다. 그냥 숫자가 맞았습니다. 물리학자들은 이것을 우연한 수 놀음쯤으로 여기고 30년 가까이 지나쳤습니다.
보어는 1913년 초에 이 공식을 보고 사흘 만에 논문의 뼈대를 세웠다고 회고합니다.
발머 공식을 보자마자 나에게는 모든 것이 곧바로 분명해졌다.보어의 회고
그래도 왜 그 자리인가
1924년, 프랑스의 루이 드브로이가 박사논문에서 짧은 논증 하나를 내놓습니다.
은 오랫동안 이었는데 1편에서 알갱이이기도 하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렇다면 알갱이인 전자도 파동이어야 대칭이 맞지 않는가. 그의 논증은 이게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이 가정에서 보어의 자리들이 따라 나옵니다. 전자가 라면, 궤도를 한 바퀴 돌았을 때 파동이 자기 자신과 이어져야 합니다. 파장이 원둘레에 정수배로 딱 맞아떨어지는 궤도만 살아남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이 논문을 어떻게 판단할지 몰라 아인슈타인에게 보냈습니다. 그의 답은 이랬습니다.
그는 거대한 장막의 한 귀퉁이를 들어 올렸다.아인슈타인, 드브로이의 논문을 읽고
고장난 장비가 확인해주다
1927년 뉴욕의 벨 연구소. 클린턴 데이비슨과 레스터 거머는 전자를 니켈 조각에 쏘는 실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유리 장비가 깨져 니켈이 공기에 노출됐습니다.
녹을 벗기려고 오래 가열했더니 니켈의 결정 알갱이가 크게 자랐습니다. 실험을 다시 하자 전에 없던 무늬가 나타났습니다. 전자가 결정의 규칙적인 배열을 지나며 를 만든 것이었습니다.
- 1885발머 — 이유는 모른 채 수소 선의 파장 공식을 맞추다
- 1911러더퍼드 — 원자 한가운데 핵이 있다. 그런데 그러면 원자가 무너진다
- 1913보어 — 자리가 정해져 있다고 가정하니 발머 공식이 나온다
- 1924드브로이 — 전자가 파동이라면 그 자리들이 설명된다
- 1927데이비슨·거머 — 깨진 장비가 물질파를 확인하다
그런데 이 그림도 오래 못 갑니다
드브로이의 그림에서 전자는 여전히 궤도를 도는 무엇입니다. 다만 알갱이가 아니라 궤도에 실린 파동일 뿐이죠. 교과서에 실린 원자 그림이 대개 여기까지입니다.
그런데 파동이라면 곤란한 질문이 따라옵니다. 파동은 한 점에 있지 않습니다. 퍼져 있죠. 그러면 전자는 궤도 위 어디에 있는 걸까요. 전부에 있는 걸까요.
이 년 뒤 슈뢰딩거가 이 질문에 답을 내놓는데, 그 답은 궤도라는 것이 아예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남은 질문전자가 퍼진 파동이라면, 우리가 전자를 하나씩 세어 잡아낼 때 그 퍼진 것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 애초에 무엇이 퍼져 있었던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