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풀이
에너지는 왜 뚝뚝 끊기나 — 낱개로 세어보니 맞았다
대장장이는 온도계 없이 쇠의 색만 보고 온도를 압니다. 그 색이 왜 그 색인지 계산해보려던 1900년의 물리학은 무한대라는 답을 얻었습니다. 이 어긋남을 메우려고 억지로 끼워 넣은 가정 하나가, 결국 세계가 실제로 그렇게 생겼다는 뜻이었습니다.
무한대가 나왔다는 건 계산이 틀렸다는 뜻입니다. 어디가 틀렸는지 찾는 데 걸린 시간과, 그것을 고치느라 물리학이 치른 대가가 이 이야기입니다.
양자역학을 다섯 편에 걸쳐 순서대로 따라갑니다. 첫 편은 난로에서 시작합니다.
뜨거운 것은 왜 빛나나
온도가 있는 물체는 무엇이든 을 냅니다. 사람 몸도 냅니다. 다만 그 빛이 적외선이라 눈에 안 보일 뿐입니다. 열화상 카메라는 그걸 봅니다.
온도가 오르면 나오는 빛의 중심이 붉은 쪽에서 푸른 쪽으로 옮겨 갑니다. 그래서 색이 온도를 알려줍니다.
여기까지는 재보면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왜 하필 그 온도에 그 색인가. 이것을 계산으로 내놓아야 이해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계산이 무한대가 나온다
당시의 방식은 이랬습니다. 빛은 이니, 뜨거운 상자 안에 들어갈 수 있는 파동의 종류를 전부 세고, 열에너지를 그 종류들에 골고루 나눠주면 됩니다. 에너지가 골고루 나뉜다는 원칙은 기체를 다룰 때 이미 잘 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파장이 짧을수록, 즉 가 높을수록 상자에 들어맞는 방식이 더 많아집니다. 아주 짧은 파장에서는 그 수가 끝없이 늘어납니다. 무한히 많은 종류에 에너지를 골고루 나눠주면 총 에너지는 무한대가 됩니다.
곤란한 것은 이 계산의 어느 단계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파동의 종류를 세는 것도 맞고, 에너지를 골고루 나눈다는 원칙도 백 년 넘게 잘 통해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둘을 합치니 세상이 불타버립니다.
플랑크의 처방
1900년, 막스 플랑크는 실험실에서 갓 나온 정밀한 측정값을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그는 먼저 그 값에 들어맞는 식을 짜맞췄습니다. 이유는 몰랐고, 맞는 식부터 찾은 것입니다.
그다음 두 달 동안 그 식이 왜 나오는지를 궁리했습니다. 그가 찾아낸 유일한 길은 이것이었습니다. 에너지가 아무 크기로나 오가는 게 아니라, 진동수에 비례하는 최소 덩어리의 정수배로만 오간다고 치자.
이 가정을 넣고 다시 계산하니 측정값과 맞았습니다. 대충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소수점까지 맞았습니다.
에너지가 이렇게 낱개로만 오가는 것을 되어 있다고 하고, 그 덩어리 하나를 라고 부릅니다.
그럼 왜 우리 눈에는 안 보이나
덩어리 하나의 크기는 진동수에 를 곱한 값입니다. 그리고 이 상수가 지독하게 작습니다.
소수점 아래로 0이 서른세 개
눈의 세포 하나를 건드리기에 충분
이 정도면 없는 것과 같다
여기부터 조금 더
1900년 12월 14일, 베를린 물리학회. 마흔둘의 플랑크가 이 가정을 발표합니다. 나중에 양자역학의 생일로 불리게 되는 날이지만, 그날 그 방에 있던 누구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플랑크 자신부터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열역학을 평생 연구한 보수적인 사람이었고, 이 덩어리 가정을 계산을 맞추기 위한 임시 장치로 여겼습니다. 이후 여러 해 동안 그는 이 가정을 고전물리학 안으로 되돌려놓으려 애썼습니다. 실패했습니다.
그것은 절망에서 나온 행위였다. 나는 본디 평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의심스러운 모험은 피하고 싶었다.플랑크, 1931년의 회고
한 발 더 나간 사람
1905년, 스물여섯의 특허청 심사관이 플랑크의 가정을 훨씬 과감하게 해석합니다. 플랑크는 에너지가 주고받아질 때만 덩어리라고 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자체가 덩어리로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근거는 였습니다. 금속에 빛을 쬐면 전자가 튀어나오는데, 빨간빛은 아무리 세게 비춰도 하나도 안 나오고 파란빛은 아주 약해도 즉시 나옵니다.
에너지를 주고받는 절차가 낱개로 되어 있다. 빛 자체는 여전히 파동이다.
빛 자체가 낱개다. 파동으로 보이는 것은 낱개가 아주 많이 모였기 때문이다.
이 주장은 오래 배척당했습니다. 빛이 파동이라는 것은 백 년 전 이중슬릿 실험으로 결판난 문제였고, 그것을 되돌리자는 말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플랑크조차 1913년에 아인슈타인을 학술원에 추천하면서, 그가 빛알갱이 주장에서 다소 지나쳤던 점은 눈감아 주자는 취지의 말을 남겼습니다.
틀렸음을 보이려던 실험
미국의 로버트 밀리컨은 아인슈타인의 주장이 틀렸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십 년에 걸쳐 광전효과를 정밀하게 측정했습니다. 틀렸음을 보이기 위해서요.
1916년, 그의 측정은 아인슈타인의 식과 정확히 맞았습니다. 밀리컨은 결과를 발표하면서도 그 해석에는 여전히 동의하지 않는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이 측정으로 플랑크 상수의 값이 독립적으로 확인됐습니다.
- 1900플랑크 — 에너지를 낱개로 가정하니 난로의 색이 계산된다
- 1905아인슈타인 — 빛 자체가 낱개다
- 1913보어 — 원자 속 전자의 자리도 낱개다
- 1916밀리컨 — 틀렸음을 보이려다 확인해버리다
- 1921아인슈타인 노벨상 — 상대성이론이 아니라 광전효과로
노벨상 수상 이유가 상대성이론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자주 이야깃거리가 됩니다. 당시 상대성이론은 아직 논쟁 중이었고 광전효과는 밀리컨의 측정으로 확실해진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더 눈여겨볼 것은 다른 쪽입니다. 양자를 실재하는 것으로 처음 밀어붙인 사람이 아인슈타인이었는데, 그는 곧 양자역학의 가장 끈질긴 반대자가 됩니다. 그 이야기는 이 시리즈의 마지막 편에 나옵니다.
다음 질문
에너지가 낱개로만 오간다면, 그 에너지를 주고받는 쪽에도 무슨 일이 생겨야 합니다. 원자 속 전자가 아무 에너지나 가질 수 없다면, 전자가 있을 수 있는 자리도 정해져 있다는 뜻이 됩니다.
남은 질문에너지가 계단이라면 전자도 정해진 칸에만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한 칸에서 다른 칸으로 옮겨 갈 때, 전자는 그 사이를 어떻게 지나갈까요? 아니면 지나가지 않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