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차 솔베이 회의
확률로만 말하는 이론을 완성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때 그곳
1925년과 1926년, 두 해 사이에 양자역학의 계산 도구가 완성되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서로 다른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놀랍게도 전부 같은 답을 냈습니다.
계산은 다 맞았습니다. 수소 스펙트럼도, 분자의 결합도, 금속 안의 전자도 이 이론으로 풀렸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아무도 합의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왜 이 질문이었나
1927년 10월 브뤼셀에서 제5차 솔베이 회의가 열렸습니다. 주제는 전자와 광자였습니다. 스물아홉 명이 모였고 그 가운데 열일곱 명이 노벨상을 받았거나 나중에 받게 됩니다.
한쪽에는 보어와 하이젠베르크, 보른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이랬습니다. 입자가 측정되기 전에도 정해진 위치와 속도를 갖고 있다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한다. 측정하기 전에 그런 값은 없다.
다른 쪽에 아인슈타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론이 틀렸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계산이 맞는다는 것은 인정했습니다. 다만 이것이 자연의 전부일 리 없다고 보았습니다.
알아낸 것
논쟁은 회의장이 아니라 아침 식사 자리에서 벌어졌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매일 아침 사고실험을 하나씩 들고 내려왔습니다. 상상 속의 장치를 설계해서, 불확정성 원리를 피해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알아내려 했습니다. 구멍이 뚫린 판, 용수철에 매달린 상자, 시계가 달린 셔터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보어는 저녁까지 그 장치의 허점을 찾아냈습니다. 한번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끌어와서 반박했습니다. 상자의 무게를 재려고 용수철에 매달면 상자가 중력장 안에서 움직이고, 그러면 상자 안의 시계가 느려진다는 것이었습니다.
회의가 끝날 무렵 다수는 보어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증명되지는 않았습니다. 양쪽 다 상대의 사고실험을 무너뜨렸을 뿐, 자연이 어느 쪽인지는 아무도 보이지 못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그 무렵 보른에게 보낸 편지에 적은 문장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는 말이었습니다.
자연은 원리상 정확히 알 수 있으며, 확률이 나오는 것은 우리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없다 — 이 회의에서 증명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것이 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논쟁은 결론 없이 이어지고, 8년 뒤 아인슈타인은 훨씬 날카로운 형태로 같은 물음을 다시 던진다